제목에 이름이 들어간 작품들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의 이름' 매거진의 3부에는 제목에 이름이 들어간 작품들을 쓸 예정이다. 제목에 이름을 쓰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훨씬 더 현실감이 두드러질 것이다. 첫번째 소설로 이기호 작가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을 적어본다. 이 소설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7편의 단편 제목은 모두 누군가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최미진, 나정만, 권순찬, 박창수, 김숙희, 강민호, 한정희의 이름이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통해 고통을 당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가난’과 ‘수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부끄러움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최미진은 어디로」의 화자인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의 장편소설을 염가 판매하고 있는 ‘제임스 셔터내려’에게 모욕을 느껴 그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화자가 모욕감을 느낀 이유는 자신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는 어느 날 아파트 단지 건너편 야산에 “103동 502호 김석만씨는 내가 입금한 돈 칠백만원을 돌려주시오!”라고 적힌 대자보를 들고 조용한 시위를 하는 권순찬이 나타난다. 권순찬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어떠한 요구를 하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지만, 주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의 존재를 지겨워한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전달한 칠백만원을 그가 거절하면서 권순찬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정작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 사람들끼리 서로를 부끄러워하고 상처를 입힌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에는 남편을 죽인 숙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 남편을 죽이기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남편이 죽임을 당할 만한 잘못을 한 인물인가 에서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숙희가 남편을 죽이기까지의 감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남편은 숙희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남편은 숙희에게 등록금을 대주고 용돈을 주었으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해왔다. 이 소설은 이런 남편에게 왜 김숙희가 적개심을 느끼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남편을 죽인 숙희는 공소시효를 3개월 남긴 시점에서 자수를 한다. 경찰서에 앉아서 15년 전의 사건에 대해 진술서를 쓰면서 자신이 왜 살인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그리고 무엇 때문에 수치감을 느꼈는지에 대해 써내려간다. 사실 숙희가 남편을 죽이기까지 해야 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녀는 왜 남편이 알아채지도 않았는데 먼저 자신의 불륜을 고백해버렸을까? 그리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세탁기의 부품을 가는 남편의 치골을 보며 왜 자꾸만 부끄러운 심정이 들었던 것일까?
숙희는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고 어른 대 어른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무참히 꺽여 버리고 만다. 불륜을 고백 했지만 남편은 “저기, 다음에 말하면 안 될까” 라고 말을 한다. 숙희는 그동안의 수치심이 솟구쳐 오르고,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던 게 쌓이고 쌓여 폭발해버리고 만다.
흥미로우면서도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소설 전체를 연결하는 핵심 주제 역시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친절을 베푸는 나의 존재를 위한 것인가? 이다. 남편은 숙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입장과 관계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동등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녀가 폭발하게 된 감정이 어떤 건지 왠지 알 것도 같다.
상대방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것,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친절을 베푸는 나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