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아이의 개별성 인정해주기
얼마 전 후배로부터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사연을 듣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놀이터에 나가서 놀려고 하는 아이에게 “오늘은 나가지 말고 밀린 문제집을 풀어라”라고 했더니 아이는 "왜 나가면 안 되느냐고,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화가 난 후배는 ‘내가 나가지 말라고 하면 그냥 안 나가면 되지 않느냐? 매번 일일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자신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면서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니 아이도 알아서 잘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속상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특히 아들이 자신에게 버릇없이 굴 때면 너무 화가 난다고 하였다.
아이가 알아서 자신의 일을 잘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어린 시절만 생각해봐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주장이 생겨나고 어른이 시킨다고 무조건 따르지 않는 시기가 시작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억지로 끌고 나가기는 더욱 힘들어 진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간섭하지도 않고, 또 소홀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 정도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일까 생각해보았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넘쳐도 좋지 않다. 부모가 이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각자 느끼는 지점은 다를 수 있으며 타고난 성향도 다르다. ‘적당하게’를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으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두고 한국의 가족주의가 불러온 문제를 들여다보게 한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한국의 가족주의와 특정한 가족 형태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가족을 둘러싼 문제로 아이들 또한 고통 받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흔히 아동학대는 방치할 때만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를 내 것으로 여기며 과보호를 할 때도 생겨난다. 과잉보호도 문제이다. 부모로부터 과보호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일수록 낮은 자존감과 우울로 인해 무기력하고 복종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또한 이런 아이들일수록 강한 아이들의 공격표적이 되기 쉽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족 단위의 개별적인 경쟁은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강요한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하지만 학대와 체벌의 경계는 모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대에는 반대하지만 체벌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하면 50% 정도의 사람들은 아이를 키울 때 체벌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한다. 그러나 체벌의 허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폭력이 내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꼭 폭력이 아니더라도 무섭게 다그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아이는 놀라서 하던 행동을 그만둔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일회성에 그칠 뿐이다. 아이의 행동을 바꾸려면 스스로 이 행동을 하면 안 되는구나 라고 깨달아야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가하는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자식을 소유물로 여길 때 방임과 과보호라는 양 극단의 양육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가족’ 이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드는 부모들도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는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하다가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조력자의 역할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키우는 시간에도 아이의 삶과 나의 삶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내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도 돌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 안에서는 개별성이, 가족 밖에서는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현실을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삶은 개인적으로, 해결은 집단적으로”라는 모토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스웨덴 사회를 통해 설명한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낮고 개인화가 가장 진전된 사회이다. 스웨덴은 1979년 부모의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법으로 전면 금지하였다.
흔히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믿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의 기대와 욕심이 포함되기보다는 아이를 향하고 있는지를 늘 생각해볼 일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나 역시 성장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거리를 두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느낀다.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으며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고 적당한 사랑을 주며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갖추는 일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가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아이의 개별성을 존중해주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