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리나 Nov 20. 2020

아버지의 원고

 아버지는 책 욕심이 많으셨다. 읽고 싶은 책이나 신문에서 소개하는 책은 꼭 사서 소장하고 싶어 하셨다. 돈이 생기면 서점에 가서 양손 가득 책을 사오셨다. 그러다보니 집의 거실과 방은 어느새 책으로 가득 차게 됐다. 엄마는 날마다 쌓여만 가는 책을 보며 한숨을 쉬셨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에 책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퇴임을 하신 후에 아버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하셨다.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여쭤보았더니 선한 사람들이 행하는 여러 가지 미담에 대한 내용과 독서에 대한 내용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해 동안 미담에 대한 기사와 책을 많이 소장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사는 빼놓지 않고 모아두셨다.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주제별로 발표도 하는 등 열의를 보이셨다. 


 하지만 역시 해보지 않은 일이어서인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서재와 책장을 정리하게 됐다. 종이뭉치들을 정리하던 중 쓰시던 내용을 출력해놓은 원고를 발견했다. 생전에 지나가는 말씀으로 지금 하는 작업을 누가 이어서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선뜻 “제가 할게요”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자신이 없어서였다.


 얼마 전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됐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아이들은 나중에 나의 무엇을 기억해줄까 궁금해졌다. 아이들과 함께 경험했던 일상적인 기억들을 간직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글쓰기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불러오고 싶지 않은 것도 존재한다. 원고를 읽으며 책에 대해 아버지가 가졌던 애정과 독서에 대한 소신, 그리고 내가 받았던 영향을 연결해서 써보면 어떨까 계획을 세워본다. 잘 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쓰다보면 뭐든지 쓰게 될 거라고 믿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