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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Nov 21. 2020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시나요?  

 예전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독서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책에 밑줄을 긋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흥미롭게도  밑줄을 긋는 분과 긋지 않는 분의 비율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밑줄을 긋지 않는 분들은 주로 책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걸 선호했다. 반면 책에 밑줄을 긋지 않으면 읽어도 읽지 않은 느낌이 들어 밑줄 긋는 건 물론이거니와 메모를 하는 분도 계셨다. 

 얼마전 북콘서트를 했는데 함께 모임을 하시는 분이 책의 여러 페이지의 윗부분을 접어서 오신 분이 계셨다. 한두 군데가 아니고 언뜻 보아도 십여 군데가 훌쩍 넘어보였다. 책의 모서리를 접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왜 책을 접으셨어요?"라고 물어보고 말았다. 그 분은 자신은 책을 읽다가 인상깊은 부분이 있으면 마구(?) 접으신다고 했다. (속으로만 말했다. '아, 전 책의 모서리가 접혀있는 걸 보는게 불편하다고요.' 하지만 본인이 사신 책을 접거나 메모를 하는 건 자유이시지요. ) 


 어릴 적 아버지는 얇은 사전의 끝부분이 접히는 것도 싫어하셔서 말려있는 페이지를 보시면 일일이 한장씩 펴시곤 했다. 지폐도 빳빳한 신권 이외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으셨는데, 신권을 내서 잔돈을 헌 지폐로 받게 되면 집에 모아두었다가 은행에 입금을 하셨다. 나는 신권에 대한 집착(?)은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책을 접는 건 엄청 싫어하는 편이다. 아버지는 밑줄도 그으시고 메모도 하셨는데 나 역시 20대까지는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는데 다독을 시작하면서 이 습관을 버렸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독서가를 책에 밑줄을 긋는 사람과 긋지 않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읽는 책에 흔적을 남기기를 싫어했다. 나도 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지 않는 대신 읽으면서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을 발견하면 바로 컴퓨터에 옮겨 적는다. 책은 컴퓨터와 독서대가 있는 책상 위에서만 읽기 때문에 바로 문장을 발췌해서 적는 게 가능하다.  만약 컴퓨터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포스트 잇을 붙인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나는 책에 밑줄을 긋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책의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었는가를 보는 일은 좋아한다. 왜 이 부분에 줄을 그었을까 궁금해하기도 하고,  내가 옮겨 적은 부분에 줄을 그은 걸 발견하면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라는 책에 보면 ‘좋은 책을 선별해 밑줄을 긋는 일이야말로 컴퓨터가 절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비록 책에 밑줄을 긋지는 않지만 이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밑줄 긋기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밑줄을 긋는 순간, 그 책은 온전히 나에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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