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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Jul 09. 2018

온전하고 행복한 사람

잠깐 스쳐간 너는, 인간의 생애 한 번은 머물다 간다는 신이었을까?

분위기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분위기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분위기 자체가 직접적인 정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전 글에서 불가리아를 처음 갔을 때 공산주의의 기운을 느꼈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 불가리아는 구 소련연방과 함께 오랜 시간 공산 국가였다. 신기했다. 이름도 어여쁜 수도 '소피아'에 대한 내 첫 느낌은 방사형의 도시 구조와 낡은 건물들 사이사이, 차가운 아침 공기에도 배어 있는 뜻 모를 서늘함이었다. 그것들이 내게 말했다. 여긴 공산주의가 세차게 관통한 과거가 있노라고. 느낌이야 정보 총합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건 너무 거대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직감이란 것이 이런 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왜인지 불가리아 사람에게 직접 묻는 것은 실례처럼 느껴겨우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사실을 확인했다. 내 느낌이 곧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가끔 오감은 놀랍도록 명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실을 안 이후로 자꾸만 이 도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나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들이었지만 표정이 다양하지 않다고 느껴진 것은 나의 착각일까. 나의 불벽은 습관처럼 도져 얼른 이 도시를 떠나라고 나를 재촉해댔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했던 것일까? 낯선 것에 대한 저항감? 두려움? 차피 그런 것에 기대어 여행을 해 오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물은 맑았고 하늘은 높다랗게 푸르른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같은 날씨였는데, 음식도 맛있었는데. 지금이라면 도시 전체를 더 재미있게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어린 날의 나는 그랬다.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그 감정에 멱살을 잡혀 끌려 다니다 떠나버리고 싶어 지는 것이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안체'라는 동독 출신의 멋있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내 나이보다 조금 어렸지만 그녀는 지혜롭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티 내지 않아도 저절로 풍겨 나오는 내면의 여유,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지적이며 영민하기까지 한데 따뜻하기까지 한 넘사벽 격인 사람'으로 보이는 그녀는 아름다운 내면을 정말로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했는데 용감하기까지 한 그녀에게 나는 반할 수밖에! 여행의 대부분은 텐트 노숙을 하고, 위험한 지역은 호스텔을 이용한다고 했는데 와우, 유럽에서 자전거 여행이라니! 국경을 넘으면서 신분증 하나 보여주면 끝! 멋있고 부럽고, 또 그녀라서 너무 잘 어울리는 여행 방법 같았다. 그렇게 너무나 멋진 그녀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1. 멋진 금발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 낡은 단벌 청바지

2. 어딘가 불편한 식사

이 어딘가 불편한 식사라는 것은, 시장에서 상한 과일이나 야채만을 모아 놓은 큰 한상자를 파장 무렵 우리 돈으로 약 500원 정도에 사서, 성한 부분을 추려 내 토마토소스와 기름에 볶는 것이었다. 실상 멀쩡한 부분보다 상한 부분이 더 많은 것이 반쯤 돼 보였다. 그런데 그 개수가 워낙 많다 보니 적은 부분을 어떻게 추려만 내도 그 양이 꽤 됐는데, 그녀는 그렇게 만든 요리로 매끼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처음엔 너무 맛있게 먹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도 좀 얻어먹었는데 몇 숟갈 못 먹고 기름이 너무 많은 그 음식에 질려 버렸다. 혹여나 상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아마도 튀기듯 기름을 넉넉히 둘러 요리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하루, 이틀, 삼일 모든 끼니를 그렇게 해결했다. 그러나 내게 너무 신기했던 것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즐기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진정 괜찮음을 넘어 행복해 보였다. 당시 철없던 나의 생각으론, 그녀의 주소를 물어 옷과 뭔가 좋은 것들을 잔뜩 보내주고 싶었다. 안쓰러운 감정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무언가 좋은 걸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의 온 감각이 말하는 대로, 동독 출신의 아가씨였다.



그냥 친해지면 될 것을.

나는 그녀가 좋았다. 정말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가까워지는 것이 이상하게 어렵고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가난은, 그러니까 '동독'이라는 지역을 고려했을 때 아마 높은 확률로서 비자발적으로 그녀의 삶에 침투했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불편함에 대해 아무런 저항이나 수치심 없이, 아니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진정, 자신만으로 행복한 체의 모습이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 낯설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우아함이었다. 내겐 결코 없는, 흉내 내지도 못할, 가난 따위는 결코  흠집 하나 내지 못할 기품 있는 진정한 우아함.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부모님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 글을 쓰며 생각나는 것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그녀는 가난을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행색부터 다른 깔끔한 서유럽 남자 배낭객들 속에서도 자신의 옷차림과 다른 생활방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나치게 비굴하리만큼 친절하거나 혹은 차갑거나 하는 방어기제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여유롭고 즐겁게 하는 그녀는 정말 '그냥' 순간이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다.





내 주변에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러 달려가기 바쁜 친구도 있었고 방학만 되면 등록금을 벌기 위해 기가 빠질 정도로 젊음과 에너지를 소진해가며 일을 하는 과 동기도 있었다. 결코 부자는 아니건만 나는 부모님의 지원에 힘입어 넉넉한 용돈을 부족하게 쓸 정도로 술, 먹는 것, 어떻게 보면 의미 없는 것들에 시간과 돈을 열심히 소비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비루함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 같다. 가난하고 싶지 않고 돈 많은 어른들처럼 소비하고 싶어 했던,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이야 미니라이프,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실천하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세상이 시키는 대로 그저 그렇게 흘러가며 살았다.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으면서. 하물며 미 제국주의 중 악의 축으로 대변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저항한다는, 학생운동을 하는 무리 속에서도 실은 돈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기 쉬운 법이었다. 배고픈 선후배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는 것은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선거 비용도 후원해줄 수 있다. 어려운 선후배가 곤경에 처했을 때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당장의 곤경을 면하게도 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체제에 대한 저항은 그 외의 문제로, 쨌던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한낱 미성숙 인간들 아니던가. 돈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기 쉬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풍족한 환경에서 크면 대게 돈에 대한 눈치나 구김살이 적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이전 직장에서 곧 회장으로 승진할 중견기업 2세와 출장을 동행한 적이 있다. 내 소속은 그의 '갑' 회사였고, 더 윗선의 회사 오너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선 가장 아래 업체가 계산을 한다. 그런데 그는 멀뚱히 서 있었다. 정말 멀뚱히. 미국에서 보낸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의 영항도 있었을 테지만, 무튼 그 자리에서 눈치 없는 (다르게 말하면 눈치를 안 보는) 그가 신기하면서 부러웠던 마음이 설핏 생각난다. 같이 있던 회사 차장님도  그가 '정말 몰라서' 계산을 안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전형적인 순진한 사람의 행동 패턴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 상황에서도 역시, 그에게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마 이 생에선 가질 수는 없을, 구김살이라곤 없는 자연스러운 여유로움 말이다.


안체 정도면 모를까. 생각해 보니 그건 돈의 문제도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을 제대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에겐 말이다.





지금 내가 안체를 다시 본다면 자연스럽게 웃어줄 수 있을까?

부끄럽지 않게 웃어줄 수 있을까? 아직도 그녀의 웃음기 어린 연하늘색 눈동자가 생각난다.


나를 삼키려는 자본주의에서 도망치는데 사력을 쏟는 것이 일상인 내가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저 존경스럽게 바라볼 것 같다.

.

.

.

안체,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있지만 밥 빌어먹고 사느라 심적으로 나를 죽도록 괴롭히는 회사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거든. 내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고 퇴근 후의 시간도 잊히지 않는 감정적 괴로움에 휩쓸리느라 역시 내 시간이 아니야. 왜 퇴근하고서까지 그러냐고 바보 같 해도 할 수 없어. 감정에서 헤어 나오는 법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 그저 웬만한 회사보다 나은 근무조건을 위로 삼 혼자 정신 승리하며 밤을 지새우지.


내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고 또 그러리라 믿고 싶은 것은 너는 어느 곳에서든 그 눈동자를 가지고 당당하게 너의 두 발로 우뚝 서서, 여유롭게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을 것이란 거야. 어느 어려움이 몰아쳐도 너는 승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로 여유롭게 넘길 힘을 가졌기 때문에 어려움 역시 너에겐 더 강해지는 경험이 될 뿐일 거라는 확신이야. 나는 너를 본 순간, 함께 지냈던 그 짧은 며칠의 시간 동안 너에게서 그 느낌을 너무나 명확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 에너지가 너무나 강력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그때 명상을 했었더라면 바로 알아챘을 것 같다. 너는 주변에서 정말 보기 힘든, 모든 인생의 순간을 타고난 명상의 능력으로 아내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에서도 드문 사람이라고.

초연히 온화하기에 존재만으로 괜찮은 사람인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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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나 너의 주소가 있을까 옛날 여행 수첩을 오늘도 뒤적여 본다.

아직 너는 MANSFELDER str.라고 쓰인 지명에 살고 있을까? 이 작은 지구별에서 여행자로, 다시 한번 길 위에서 널 만나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볼 수 있기를, 그때엔 내가 좀 더 어른이 되어, 조금은 스스로 완전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루마니아에 그토록 가고자 했던 이유가 되었던 소설 '포르토벨로의 마녀'의 주인공, 그 아테나의 현존은 바로 네가 아니었을까.

인생에 한 번은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고 하던데, 내게 머물다 간 신은 어쩌면 바로 네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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