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예민한 당신

사람 골라 예민한,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당신이 뿜는 독소

by 떠돌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예민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정 부분에 대한 예민함 일수도 있고 성격적 예민함일 수을것이며, 그 종류는 인구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위하여 그 과정을 참거나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관계가 수직적이거나 편한 사람에게는 (혹은 만만한 사람에게) 그 예민함이 짜증이나 분노의 형태로 표출되기 쉽다.


나는 소음이나 특정 음역대에 예민한데, 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예민함이 곧 통증으로 직결되는 타입이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한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겐 이를 알리고 양해를 구한다. 타인들에 둘러 싸여 있거나 사회생활의 공간에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엔 대부분 자리를 피함으로써 상황을 해결하고, 불가피 대부분의 경우 귀마개를 이용한다.


내 옆자리엔 이 매거진을 통해 몇 번 언급한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상사가 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의 말은 (그는 기억 못 하겠지만) 그의 괴롭힘을 참다못해 그 이유를 물었던 작년 1월이었다. 그는, 내가 싫어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눈에 더 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표정은 자신이 무슨 말을 뱉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그 순간 놀람도 아닌, 표현하기 힘든 감정과 동시에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느낌으 받았다. 내 안의 뭔가가 번쩍 했다.


그는 왜 나를 싫어할까?


나와 갈등 한 번 없던 사람, 심지어 퇴근하고 술 한잔 하곤 했던 그가 왜 그토록 나를 싫어해왔는지는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우리 회사엔 장기근속한 여자 과장이 한 명 있는데 (‘나영’이라 칭함)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이었다. 일화를 쓰자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투사하며 그걸 꽁꽁 숨기는데 에너지의 대부분을 쓰고, 그로 인해 소진된 에너지에는 우울함을 덧대 자기 연민으로 사는 사람이었으므로 카톡엔 항상 자기 연민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외모는 참 순하고 표면적인 성격도 그랬기에 나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웠고, 비정상적으로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잦은 빈도의 칭찬을 하곤 했다. 그 순해 보이는 사람이 아래 여직원들에게 기를 못 펴는 것도 참 안되어 여직원들 중엔 내가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는데 반면에 남직원들과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던 그녀였다. 그녀는 너무 착하니까, 남직원들이 안쓰러워하고 잘 따르며 가까이 지냈다.


그런 나영이가 자신과 친한 모든 직원들에게, 심지어는 자신과 사이가 안 좋은 여직원들에게도 나의 개인적인 정보와 신상은 물론, 없는 말까지 교묘하게 지어내 나를 아주 XXX으로 만들어 왔던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낌새는 몇 번이나 있었지만 사람에 대한 악의를 잘 눈치 채지 못하는 나는 그녀와 계속 친하게 지내던 차였다.


왜 나는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을까? 일련의 상황을 알게 된 나는 나를 자책했다.

배신감과 열 받음에 몇 달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떠올려 보면 그녀는 나를 몹시도 질투했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질투 하는 말 그대로 '질투의 화신' 이었다. 타인을 걱정하는 척 깎아내리며 자신을 높이고, 루머를 퍼뜨리며 싸구려 관심이나마 얻는 것은 그녀의 방어기제였다. 그걸 왜 몰랐을까, 몇 번이나 힌트가 있었는데.





사람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도 가까운 누군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험담을 들으면 그 사람이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런 착각을 참 잘 일으킨다. 언론이 그렇지 않은가, 이상한 프레임을 달아 일단 이미지를 실추시킨 후 사실 관계가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 라지만 당사자는 팩트도 아닌 루머 폭격기로 이미 너덜너덜너덜너덜 해진 후다. 회사라고 다르겠는가. 그렇게 착한 우리 나영이가! 너무 착해서 아래 여직원들한테도 매일 당하기만 하는 우리 나영이가 욕하는 애라면 그 애가 분명 이상하겠지! 떠돌이 완전 나쁜년이네! 완전 잡년이구나! 이렇게 된 거였다.


병신 같은 나는 나영이가 유일하게 친한 동성인 내 사생활을 소재 삼아 내 일련의 모든 상황들에 대해 확대 재생산을 해내는지도 모르고, 그 분께서 올해 퇴사하기 전까지 계속 가깝게 지냈다.

내가 한 속 이야기를 타인들 앞에서 '이건 비밀인데, 떠돌이가 걱정되서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라며, 그 좋아하는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얼마나 까대고 퍼뜨려대는지도 모른 채로.

색안경 낀 사람들 속에서 내 회사 생활이 순탄할 리가 없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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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사 시, 나와 잘 해보자던 옆의 동료는 나영이를 누나 누나 하면서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싸늘하게 쳐다보는 눈빛에서 칼날이 느껴졌다.


나영이와 동갑이라며 친하게 지냈던 대책 없는 과장 한 명은 회식 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다음날 아침 내 자리에 와서 육두문자를 써 가며 욕을 했다. 이 과장은 원래 상사에게 술 취해 잔을 던지거나 욕하는 하극상이 취미이자, 아랫사람 괴롭히기와 성희롱은 옵션인 그냥 분노조절 장애자였는데, 정체 파악 후 조심조심 피해 살아왔으나 나영이 덕분에 똥물 튄 것이었다. 난 쟤가 너무 싫어 질투나, 의 마음을 바탕으로 날 응징 해 달라며 음과 양으로 엄청난 압력을 넣었겠지.


나영이가 ‘친오빠’ 라며 따른 내 옆자리 민감 보스 과장은 한 술 더 떠 다른 사람에게 내 욕을 널리 널리 잘 전파해주었고 직, 간접적인 화풀이를 내게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의 근원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원래 피해의식을 바탕으로 남 이야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상황의 바탕엔 그녀의 외모가 매우 순해 보여 속기 쉬운 것도 한몫할 것이다. 웹툰을 보다 느낀 건데, 남자를 대할 땐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수아가 남자들에게, 타인에게 보이는 행동 양식과 매우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더해 굉장히 희생적으로 사람을 대한다.


나영이는 여왕벌이었다.

모든 걸 뒤에서 자기가 조종하지만 피해자 코스프레에 능통한 여왕벌.

무튼 2년 동안 직장 내에서 느껴온 이유모를 싸늘함과 괴롭힘에 대한 이유를 올해 초 알게 되면서 나는 정신과를 찾아야 했다.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다. 배신감과 분노를 넘어 그런 인간을 피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분노가 일었다. 이미 다 퍼진, 어디까지 어느 정도의 범위인지 파악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모든 소문을 일일일 해명하고 싶어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이걸 공론화 해 말아? 하는 생각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나영이 그 XX에게 전화해서 욕이나 한바탕 해 말아, 등등.(그럼 또 날 걱정한 거라 하겠지) 몇 달은 머리를 감다가도 업무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자기 직전에 누워서도 머릿속을 뚫고 예고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치는 잡념들에 시달리느라 술 없이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려웠다.



무튼, 그녀는 나갔으나 나에 대한 미움은 그대로 간직한 내 옆자리 과장은 모든 짜증과 미움을 나에게 투사하는데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 내가 매우 만만해 보이는 행동 양식을 고수해 왔으므로 내게 더 풀기 쉬운 탓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얼음 씹어먹는 소리, 과자 먹는 소리, 자기 주변에 왔다 갔다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는 이 예민 보스는 오늘 타 부서가 자리 정리를 하느라 시끄러운 것에 대해 혼자 구시렁거리며 불편함을 표현하다, 잘 있던 내가 잠깐 일어서자 갑자기 나에게 "야! 너 자리 바꿔라." 고 소리를 지른다. 아차 싶었는지 "아니 왜 그렇게 부산스러운데? 나도 불편하고, 너도 내 눈치 봐야 하니까 불편할 거 아냐"라고 말한다. 그리곤 자기의 심복 옆자리 대리를 이야기나 하자며 데리고 나간다.

아? 제가 부산스러웠나요....?


이 대책 없이 멍청한 인간은 기억이 안 나나 보다.

내 옆으로 오기 전 다른 직원이 얼음 씹는 소리가 싫다며 바꾼 자리가 지금 자리란 걸.

문제는 내가 아니라 너다.

다만, 멀리 떨어져 눈앞에 덜 보이면 당장 분노를 받을 가능성은 적으므로 나는 또 비굴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네, 제가 과장님 신경 쓰게 해 드리고 과장님은 귀 예민... 아니 아 제가 그러니까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혼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짐 옮길 일, 자리 배치, 상사 컨펌을 떠올리자 맘이 바뀐 건지 5초 후 "좀 생각해보자" 고 말씀하신다. 게으르신 분이라 자리 바꿀 일을 생각하니 순간의 화도 누그러지나 보다. 아 싫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셀프 복지를 위해 관계를 끊어 왔지만, 밥 빌어먹고 사는 직장에선 고립을 택해왔다. 그러나 어설픈 연민으로 인해 완벽하지 못했던 고립으로 나는 썩어 문드러진 동아줄을 잡다 처절하게 떨어졌고 그 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나영이가 없으니 사무실에 찐득한 미움과 분노들이 조금은 덜 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정돈되지 못한 나의 솔직한 마음, 원망과 억울함, 분노가 가득한 마음을 글로 뱉어낸다.

이 좁은 사무실에서 도망갈 유일한 이 공간 으로.


이런 사건을 겪으며 얻는 결론은 또 염세적이기 짝이 없다.
사람은 안 바뀐다. 이상한 사람은 피하자.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