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상관없는 우리 사회의 법칙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 했다.
자신의 예민함을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자신이 아니라, 내 자리를 옮기라는 상사의 지시를 이해하기 어렵다.
너 자리 나 옮겨 XXX야. 내 솔직한 심정이다.
날 괴롭게 만든 그분 덕에 밤을 새웠다. 수면제를 먹고 자도 자꾸만 깨게 되는 날은 괴롭다. 나의 소심함을 탓하는 못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련다. 타인의 짜증과 폭발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만큼 강철 멘탈이 못됨을 인정한다. 그것이 나의 본모습이다.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축적된 결과물이었다. (해당 사건은 전 편 "내겐 너무 예민한 당신"에 나옴)
밤을 새우고 난 다음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천천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 나가던 중이었다. 무엇이 또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큰소리를 내며 사실을 악의적으로 꼬아 읊어 대는 그분에 의해 내 말은 힘없이 끊겼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나는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 너무 억울했지만 침착했다. 덤덤한 척했다.
침착함은 권력자 앞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자리 이동을 언급한 그분은 자기 심복쯤 되는 직원에게도 나와 자리를 바꾸면 안 되겠냐고 이미 시장 조사를 해 놓은 터였다. 말 그대로 내게 짜증을 토로하기 전부터 ‘이유 없이 싫은’ 나를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써 놓은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러 사람에게 '그냥 싫은 직원'의 자리 이동을 부탁 혹은 명령하며 좋은 말을 했을까? 아마 나의 어떤 단점이든 끄집어내어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이유 없이 싫음’을 언급할 만큼 용기 있거나 정직한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나는 이유 없는 감정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도 지레짐작하고 있다.)
자리 이동을 위해서는 우선 팀장 허락이 필요하다.
팀장에게 보고 할 이유나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했다. 이 말인즉슨, 어떻게든 내게 자리를 옮기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를 눈치 보게 만들고 짜증을 폭발시킬 것이란 뜻이다. 이야기 도중 그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 눈치 안 보게 해 줄게"
이 무슨 선심이란 말인가?
그만큼 나를 눈치 보게 해왔다는 뜻을 내포한 이 문장엔, 무려 눈치 보지 않음을 '허락' 하겠다는 이 문장엔, 그분께서 나를 얼마나 호구로 보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신세한탄) 뒤이어 나에게 융통성이 없다고 했는데, 과다하게 눈치 보는 인간이 융통성이 없을 수 있나? 그가 말한 융통성 없음은 이런 거였다.
"시키는 일만 하는 것, 업무 하달 시 내 태도. (는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말한 듯하다)"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은 그래, 업무 공유를 전혀 안 하는 팀의 특성을 둘째 치고서라도 내 단점이라고 치자.
그러나 업무 하달 시 내 태도가 우물쭈물했던 상황은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난다. 한 임원이 그분에게 직접 지시한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부탁했고 그 사실을 안 임원이 굉장히 탐탁지 않아했단 (실은 분노에 더 가까웠다) 사실을 직접 들어 알고 있었다. 근데 눈치 없는 그분은 그 임원이 다시 비슷한 종류의 일을 지시하자 나에게 다시 시키는 것이었다. 임원의 속내를 알고 있던 나는 너무나 난감했다. 대신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럼 줄줄이 비엔나처럼 동시 호출되어 욕먹을 것이 분명했다. 고민하다가 나는 사실을 돌려 말했다. 그러자 그의 반응
"야! 내가 화를 내야 말을 듣겠다는 건가? 그래 너 두고 보자" 라며 화를 내셔서 에라 모르겠다 그래, 해드렸다.
당연히 그분은 이를 갈고 있던 임원에게 호출되어 호되게 혼났는데 사람의 멍청함이란 고쳐지기 어려운 것인지 3번째 테스트를 위해 임원이 그분께 지시한 사항을 또다시 나에게 던졌다..(한숨)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그분은 멍청할지언정 권모술수 쪽으로는 굉장히 발달한 사람이다.
자리 이동 요청 및 컨펌을 위해 팀장 보고 시, 그분은 자신과 관련된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 하긴 ‘그분이 제가 싫어 자리를 옮기랍니다 이유는 딱히 없답니다’라고 하면 팀장이 허락 해 줄리도 없거니와 자기가 이상한 사람 되지 않겠나.
조직에서 개인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대부분 무조건 불이익이다. 그건 피해자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니, ‘네 탓을 하거나 적당한 핑계를 대거나’ 어떻게든 사유를 내게 짜 내라는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내가 싫어서 꺼지라는 거면, 최소한 핑계 정도는 같이 짱구 굴려주는 게 예의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옆을 보니 주무시고 계신다. 자 이제 나는 내가 자리를 옮겨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든 쥐어짜 내 보고 후 임원회의에 내 이름이 공론화되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한다.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저 멀리멀리 가버리고, 모든 불이익도 알아서 감당하라는 것이다. 왜? 나 너 싫으니까. 아 이유는 나도 몰랑.
잠을 못 이루던 다음 날, 나는 굳은 결심으로 열심히 짱구를 굴려 팀장에게 자리 이동을 요청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른 자리로 옮기겠다고. 팀장은 몇 번의 질문 후 흔쾌히 OK. 내 짱구 칭찬해!
그런데 나의 요구 사항은 한 가지 더 있었다. 표면적으로야 내가 단순히 기존 업무를 병행하며 추가 업무를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이지만 나는 완전히 그분 에게서 공식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겹치는 업무도 거의 없었기에 현재 그분의 아래로 배치된 조직도에서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그의 괴랄한 요구도, 불평등으로 점철된 업무도 더 이상 지시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목표였다.
조직도야 형식적인 건데 왜 굳이 조직도까지 바꾸겠다는 거냐? 며 낌새를 챈 팀장이 물었다.
나는 덤덤하게 몇 가지를 말했고 팀장의 피로한 표정이 느껴졌다. 하기야 대부분의 윗 상사는 (어른들) 젊은이들 싸움에 관심 없다. 그러더니 처음의 OK를 취소하며 생각해 보자고 한다.
외근을 갔다 온 그분이 재촉하듯 묻는다.
"야 (너 자리 옮기겠다고) 보고 했니?"
"네"
"뭐라시던데?"
"생각해 보자고 하시던데요"
" 아... xxxxxxxxxx"
사건 1일째 다음 날 자리이동을 요청했고 아직 아무런 답도, 진척도 없다.
팀장님이 뭔가 회의를 하는 것 같을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 든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나는 팀장에게 어쩌면 성격 별난 직원으로 찍힐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회사를 다닌 몇 년 동안, 나는 표면적으로나마 조용히 회사를 다녀온 직원이고 (말 많은 직원들 사이에선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런 보고를 입사 이례 딱 2번 해 보았다.
나영이 사건과 이번 자리이동 사건.
가장 참기 어려운 감정이 억울함이라는데, 그 두 가지 사건이 내 인내심을 폭파시켰던 것 같다.
덤덤히 시간이 흐르기엔 일분일초가 너무나 길고 호구로운 소심이는 오늘도 말라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