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을 받았다

아니, 해고 통지였다.

by 떠돌이

이번 주 월요일,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고임금자로서 부담을 느껴 퇴사를 결심한 부장님의 송별회가 있었다. 그는 창립 멤버이자 경영진 (=회사 오너) 들과 가족처럼 지내 온 사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회사 측에서 따로 송별회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로 회사 사정이 어려운가 싶었지만 무튼 가는 사람 인사는 해야 하기에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도 참석했으니 결국 회사 송별회처럼 되었지만, 무튼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떠나가는 사람을 보는 것은 늘 마음이 좋지 않다. 그것도 좋지 않은 이유로.


그날, 여러 소회를 말하며 가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도 하던 중, 술을 좀 드신 대표이사님이 자기도 한마디 하겠다 하시더니 말씀하셨다. 내일 폭탄을 터뜨릴 것이다. 미리 말하는 것이 좋은지 안 좋은 지는 모르겠으나 내일. 뭐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저런 뉘앙스였고, 나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폭탄의 실체가 뭘까 궁금해하던 차에 면담요청이 왔고 대표이사의 입을 통해 나는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생각해보니 통지였으므로 권고사직이 아닌 해고가 맞다. 이번 달 말까지 일하고 다음 달 임금을 주겠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한 달치는 위로금이 아니라 30일 이전 해고 통보를 하지 않았으므로 법적으로 주어야 함) 나를 포함한 총 5명이 정리 대상자가 되었다.


이미 한 번의 희망퇴직 및 정리해고가 있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한 것이 올 2월이었다. 6개월 만에 큰 사건을 겪은 회사 사정은 급격히 어려워졌고 임원진은 다시 인원감축의 칼을 들었다. 그렇게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나는 딱 좋은 후보였을 것이다. 미혼, 여자,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본의 아니가 펜딩 되었으며 해외 에이전트 사장 놈은 내 상사를 비롯한 임원진들에게 지속적이며 노골적으로 내 험담과 욕설을 휴일에도 보내며 임원진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첩'-시게라고 불리는 이란의 문화중 하나로 임시 결혼-이 되라는 요구를 거절한 뒤로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꼬투리 잡아 사장을 비롯한 임원에게 메일로 나의 험담을 하였고 참다못한 임원이 그 내용을 일부 내게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무튼 여러모로 걸리면 걸렸지 결코 도움되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 이럴 때 실감한다. 여자로 태어난 자체가 핸디캡이라고. 여자가 일을 더 못하고 야근을 안 해서, 혹은 돈만 잘 벌어줘 봐라 트랜스젠더라도 갖다 쓰지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실적이 같아도 여자가 잘리고, 실적을 잘 내도 여자가 잘리며, 실적을 눈에 띄게 혹은 2배 이상은 내야 여자가 살아남는다. 내가 이 분야의 회사에서 겪은 객관적 팩트다. 더불어 실적을 낼 기회조차 여자에게 돌아오는 빈도가 적다. 상세 내용은 쓰지 않겠지만, 살아남는 남자 직원은 실제 송금 사고를 낸 적이 있고 보통 같은 프로젝트 시 마감은 내가 빨랐다. 고객사에서 고마움을 듣는 쪽은 나였고.

그러나 내가 떠나고 그가 남는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기묘할 정도로 내게 배분되는 일이 적긴 했었다. 자꾸 일이 그 남직원에게만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이는 아마 구실 만들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인정한다. 나는 이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날고 기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자책하지 않으려 하지만 분명한 자기반성은 해야 한다. 윗선과 주변 환경이 날 어떻게 했던, 임금을 받는 이곳에서 내 밥그릇은 내가 만들고 지켜야 했다. 유리천장을 부수는 것도 내 몫이었던 것이다 제기랄. 일에만 좀 신경 쓸 수 없을까?? 응??

(실제 임금 수준, 기회의 불평등이 여자에게 적다는 것은 팩트이다. 또한 권력자의 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기타 잡놈들의 성희롱까지 신경 써야 한다 왜? 여자니까. 문제는 당한 것도 억울한데 참지 않고 이슈화 시키면 또 대미지는 내가 고스란히 입게 된다. 위의 예시처럼.)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난다. 자리는 해고 통보를 받은 당일부터 짐을 옮기고 정리를 시작해 크게 정리할 것이 없고, 나중에 개인적인 파일 정도만 지우면 될 정도로 정리를 해 놓았다. 퇴직자들을 보내는 회사 맘도 좋지 않으니 회식자리를 만들어 참석을 요청하는데 내가 꼭 가야 하나 싶다. 마지막까지 명령이라니.

(+내가 여러 글에서 언급했던 나를 괴롭히는 과장도 같이 쫓겨나는데 나와 함께 분명한 송별 회식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내일이 회식이라 오늘 다시 물어보니 갑자기 갈 거라길래 안간다셨잖아요? 반문하자

"내가 언제?! 반반이랬지" 라며 소리를 친다. 뚝배기 깨고 싶다. 꼭 자기 말을 바꿀땐 민망함인지 큰소리를 치는데 이놈은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임원진은 미안한 마음에 꼭 참석하길 바라는 눈치지만 자의가 아니라 쫓겨나는 사람의 심정은 그 자리조차 꺼려지게 하는 민망함과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어 참석할 용기 내기가 어렵다. 지난번 퇴직한 사람들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짐작만 해 본다.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므로 내가 소망하는 긴 여행은 못 갈 것이다. 다만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한다. 출석수업이 있는 9월은 방송대 공부에 전념해볼까 하고.


어디로 갈까,

파키스탄의 훈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마음속에만 묻어놓아 그저 단어였던 장소들이 구체적 실체가 되어 스멀스멀 표면으로 머리를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