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배신당함

지금 딱 내 기분 <마약왕> 조조용은 아닌 <스윙키즈>

by 떠돌이

내가 민감해져 사회에 맞대고 살아야 하는 바깥쪽의 살이 연해진 것일까 아니면 나를 둘러싼 환경의 자극치가 자꾸만 높아져 간 것일까. 무언가 덴 듯 스치기만 해도 아프고 눈물이 줄줄 난다.


잠을 설치는 날이면 이부자리를 걷고 일어나 집 근처의 영화관으로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단순히 출연배우를 기대하고 본 영화는 실화는 아니라고 하지만 당시 상황을 모티브로 했다는데, 너무 끔찍해서 보고 난 후 기분이 제대로 불편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영화를 떠올리면 인상이 막 써질 정도로 표정관리가 안되니 말 다했다. 아 젠장 괜히 봤다 싶은 생각 이면에는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나의 비겁함도 보인다.


동화작가셨던 권장생 선생님이 그러셨다지, 읽고 나면 불편함이 느껴지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그런 면에서 '마약왕'은 어쩌면 좋은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상의 폭력에 얼마나 둔감했던가. 모른 척하면서 사태를 키우는 방관자가 되길 얼마나 여러 번 자처했던가.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디서 얼마나 아파하고 있을까.


최근까지 존재했던, 혹은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공권력의 폭력에, 자본의 폭력을 콜라보하여 민낯 그대로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은 꾸미지 않아 날것 그대로 잔인하다. 돈이 있으면 내 동생 귀를 자르고 내게 오줌을 마시게 했던 깡패가 나중엔 내 문을 열어주는 부하가 되는 식으로, 돈만 있으면 범법을 저질러도 그 많은 증거 앞에서도 하루 만에 풀려나는 식으로 현실에서 보거나 들었을법한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낸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게 급속히 발전했다는 몇십 년 사이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 사법 시스템 역시 무섭고 끔찍하다. 송강호가 고문을 받는 장면에서 내는 신음소리는 일반적으로 아프거나 폭행을 당할 때 낼 것이라 의례 짐작하게 되는 소리와는 다르게 너무도 리얼하게 끔찍해서, 근현대사 책에서 봤었던 혹은 박물관에서 봤었던 온갖 끔찍한 사진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덕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젯밤엔 작은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져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돈으로 신분은 물론 삶의 결을 세탁하며 사는 영화 속의 삶이 잠깐이나마 멋지다고 생각한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그로 인해 얻는 대가는 얼마나 징글징글하던가. 고생을 함께 해온 조강지처의 삶을 박살 내버리는 것도 모자라 불안을 못 이겨 팔에 주삿바늘 자국이 수두룩한 약쟁이가 되는 삶. 파멸을 잊기 위해 더 큰 파멸로 자꾸자꾸 빠져 드는 개미지옥 같은 삶. 송강호의 캐릭터를 보며 계속 들었던 생각은 나쁜 짓도 배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나 같은 쫄보는 절대 못할 것 같다는 거였지만 실은 알고 있다. 나 같은 나약한 종류의 인간은 실은 유혹에는 치명적으로 약하고, 그래서 베포 없이도 저렇게 망하는 건 순식간이므로 가능한 한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영화의 스포가 될 듯하여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소감을 듣고 싶은 영화이긴 하다.

보고 나서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볼만했는지 혹은 불편했는지. 후자라면 어떤 게 불편했는지 말이다. 그것이 곧 본인이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무언가 일 테니 말이다.



자는 방이 추운 편인데도 등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베일 정도로 얕은 잠을 자다 깼다. 마약왕의 여파가 크다.

오늘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눈이 떠져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제목도 발랄한 스윙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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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또 뭔가.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가벼울 줄 알았던 영화는 무거운 마음에 돌덩이 하나를 더 얹어 놓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일요일 오전, 눈은 밤을 새운 듯 피로하며 얼굴의 피부는 따갑고, 어깨는 오랜 공부를 한 수험생처럼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위엄 있는 스트레스가 온몸 위로 얹어진 상태. 기분전환용 발랄한 코미디쯤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코미디를 가장한 가족용 전쟁 다큐라면 너무 오버일까.

영화는 포면적으로는 춤에 대한 갈망을 가진 인물들을 내세우지만, 실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준다.


살육의 쓸모없음을, 전쟁은 그런 살육으로 이루어졌음을, 이념을 강요하는 폭력을, 이념을 강요하는 폭력의 묵인 아래 자행되는 무차별적인 살인들을, 무려 인간이 죽어나가는 살인이 하찮게 취급되는 비이상적 상황이 일상인 삶을, 전쟁의 파괴로 초래된 끔찍한 가난을, 그 가난으로 인해 옹색한 삶의 모습과 몸까지 팔고 덩달아 영혼까지 팔게 되는 일상들을. 그것이 바로 전쟁임을.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진다. 이제 겨우 오후 두 시도 안된 이 시간에 습한 무덤 같은 집에 가서 눕고만 싶다.

도서관 컴퓨터실 옆자리에서 계속 머리를 흔들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옆자리 청년에게 내어줄 인내심 조차 남아있지 않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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