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떻게 나 혼자인 것만 같던 날

그런 날들이 있었다

by 떠돌이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 겪는 어느 정도의 갈등 속에서 자랐으며 또 어느 정도의 불행에 면역을 가질 만큼 적절한 불운에 길들여져 자라왔음을 안다. 다수가 겪었다고 해서 감정의 깊이가 경감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사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살았다면 내가 겪었던 것들이 폭력이자 불행 인지도 몰랐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살아왔다 생각한다. 남들 다 겪는 일이니까 하면서. (예민하게 생각해보자면 역설적으로 나 뿐 아니라 우리 세대는 우리는 얼마나 깊고 넓은 폭력 속에서 자라 왔는가 싶다.)


그러나 나는 실감한다. 어린 시절의 불행은 그것이 사소할지라도 의지와 상관없이, 보통은 예고 조차 없이 불시에 나를 습격한다는 것을.


누군가 웃는 것이 나를 비웃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 타인의 기척이 나를 위협하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화가 난 성인 남성이 화를 못 이겨 손을 쳐들 때,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릴 때가 있다

용기 내 조직에 불편한 말을 할 때 누군가 내 머리통을 내려칠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부당한 지시의 단순 업무를 반복하며 모니터를 눈 빠지게 들여다볼 때 사무실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그런 미친 짓을 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착한 사람 병에 걸려 혼자 사람 좋은 척은 다 했었다. 그래도 착하단 소리는 못 듣고 드세게 생긴 외모 덕에 기 세다는 소리만 들었던 날들. 고등학교 때 어떤 날,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선생의 부름에 앞으로 불려 나가 정확히 다섯 번의 주먹과 두 번의 손바닥으로 양 볼을 맞고 입안이 다 터졌었지만 사과는 내 몫이었다. 나는 어떻게 사과를 했었나.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나쁘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해십니다. 인상이 좋지 못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어느 날 나간 사회 모임에서 내 솔직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했을 땐 어두운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회사를 마치면 칼퇴를 하고, 자정이 넘도록 바닥에 씻지도 않고 누워있어도 에너지 충전이 도무지 되지 않던 그런 날들의 반복 속에서 살아보려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 쉬어 보고 싶어 힘을 짜내어 나간 모임이었다. 모임에서 나를 이해하는듯한 행동들 속에, 솔직한 나의 말에 돌아온 것은 그늘이 있어 보이네요.라는 위로를 가장한 웃는 얼굴의 지적. 아, 나를 괜히 드러냈구나. 여기도 아니구나. 어쩌면 내가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어느 곳도 없겠구나. 또 뭘 기대한 거지?


이유 없이 자꾸만 끓어오르는 자살충동. 이유를 알 수도 없지만 도망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 후로는 꾸준히 이 충동을 받아들여 다독이는 척 도망 다니기 바쁘다. 왜, 자꾸만 왜, 왜 반복적으로 내게 다가오는지. 대부분의 날은 오줌을 누면서도 뜬금없이 이런 생각에 휩싸이는 것이다. "아, 자살하고 싶다" 자살이 뭔지도 모르는 게. 하룻강아지 같은 게, 샛 병아리 주제도 안 되는 게.


이제 좀 그만해도 되려나 싶다. 나를 꾸준히 따라다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약을 팔기 위한 진화심리학자들의 좋은 핑계라는 강신주 박사의 말은 차치하고, 필요할 땐 약을 먹었고, 안 먹는 날이 늘었고 또 견딜만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반복되는 충동들은 당황을 넘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고 싶다. 아니, 다시 태어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무슨 죄가 그다지 많다. 잘못한 것들이 그토록 많다. 헤아릴 수 없는 것들까지 더하면 얼마나 태산 같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혼자를 그토록 불안해하면서도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다. 멋질 필요도 없고 그림 같은 풍경일 필요도 없다. 그냥 또 두려움을 가득 안고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을 버릇처럼 한다.


미친 듯이, 돈도 없이 시간도 없이 생각도 없이 떠는 내게 사람들은 입을 모아 자유롭다고 말한다.

유효기간 만료 전 붙인 추가 기재 페이지까지 소진된 후 새로운 여권을 받았다. 10년의 유효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그 많은 페이지를 채운 동기나 이유 같은 것들은 사실 자유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스스로 잘 안다.

그 모든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적인 기록들은, 돌아올 곳이라 일컫는 삶의 근원지 조차 불안하여 제대로 발 디디지 못한 나의 흔적이라는 것을 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나약함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 까지.


나의 여행은 유희보다 불안이다. 즐거운 순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하여 떠났고 불안을 조금 벗어난 곳에서 조금 더 즐겁고 행복했을 뿐, 나는 언제나 두려움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비겁한,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 나의 나약함을 마주하지 못한, 나의 추함과 상처를 대면하지 못한 오랜 도망자였다. 이것이 나의 비겁함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내가 얼마나 비겁한가 하면, 나는 매운 걸 싫어하여 근처 도서관에 가면 늘 불 밀면을 시킨다. 특이할 정도로 매운 탓에 다 먹고 나면 정수리에서 땀이 나는 것은 물론 팔이 저릿하며 상체가 마비될 정도로 매운맛을 내는 그 밀면을 청결치도 않은 그 식당에서 꾸역꾸역 곱빼기로 다 먹어낸다. 괴로우면서, 먹기 싫으면서, 억지로 곱빼기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나는 그렇게 비겁함을 또 저 멀리 밀어내는 시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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