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뻥 차여서 전하지 못한 말
인생의 타이밍이란 것이 늦추어졌다고, 옛날 30대가 요즘의 40대와 같다고 해도 나이에 대한 불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더라. 사랑을 꿈꾸고, 실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낭만적 연애를 꿈꾸면서도 내 나이에 그런 것들이 가능할까 싶은 늙은이 같은 생각이 드는데 가끔 그 생각이 몹시 커질 때도 있었어. 그래도 너를 가끔 마주치게 되는 순간들은 참 좋았다. 그것이 혼자만의 마음일지라도.
잘 나가지도 않는 스터디에서 너를 마주치게 될 땐 참 좋았다. 너와 내가 출석하는 일자가 엇비슷한 것도 괜스레 뭔가 운명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직진하는 성격에 더해 술 마시면 없던 용기가 솟아나는 내 기질 덕분에 시작된 우연한 연애.
그날은 날이 밝도록 술을 마셨고, 사람들이 오가는 아침의 거리에서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이유로 내가 너의 팔을 붙잡았고, 너는 그런 나를 껴안아 주는 것으로 내가 가진 호감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햇살이 막 비추기 시작한 거리에서 네 품에 안겨 짧은 입맞춤으로 시작된 연애의 출발점은 비록 술냄새 섞인 기억이라도 참 좋았다. 너의 큰 키도,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도, 쌍꺼풀 없이 강아지 같은 눈도, 내가 생전 처음 만나 본 연하의 남자 친구라는 사실도 나는 참 좋았다.
대화를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우리가 참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래서 마음이 깊어갈수록 불안했었다. 불안을 숨기느라 나는 사소한 것들을 자랑처럼 늘어놓기 바빴고 뒤돌아 집에 올 땐 초라한 내 모습에 기운이 쭉 빠졌다. 분명 내가 너보다는 큰 그릇 같은데, 그냥 너보다 책 몇 자 더 읽은 것뿐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 나는 나의 바닥을 자주 보았고, 너에게 만은 보이고 싶지 않은 그 바닥을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말들에서 너는 느꼈을 것 같다. 사람이라면 온당 느낄 수밖에 없는 열등감 같은 초라한 감정들이 둔갑한 공격적인 파편들을. 그래서 네가 지쳤을까? 진심을 전할 새도 없이 너에게 뻥 차였지만 한 가지 잘했다 싶은 것은 숨기지 않았던 너에 대한 애정.
숨길 수 없어 말의 언어로, 몸의 언어로 치환되었던 애정표현들.
진부한 연애의 끝자락일지라도 그래도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그 출렁다리에서 그리고 선착장에서, 아침의 그 거리에서 너를 껴안고 기뻐했던 내 모습은 모두 진심이었다고.
너무 잦은 빈도라 감흥이 없다고 너는 말했었지만 내가 했던 보고 싶다는 그 말들은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진심이었다고. 너를 많이 좋아했었고 그 마음이 잘 사그러 들지 않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
사실은 종잇장 같은 자존심 때문이지만, 용기 없음, 나이에 대한 두려움 같은 비겁한 것들 때문이지만
정말 사실은 내가 잡아도 너는 그냥 갈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지만, 뚜렷하게 느껴지던 정말 끝났다는 정확한 예감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너를 그냥 그렇게 보낸던 그날이 불쑥 후회되는 오늘 같은 날은 마음이 참 이상하다고. 혹시 너도 그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