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걱정되지만 오래오래 살아 주세요
몇 년 동안 지인의 집 앞에 출몰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길고양이의 삶은 고단한 법이라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면 불안했고 모습이 보일 때엔 안도했다. 바쁘지 않은 길, 집 밖을 나섰을 때 마주치면 집으로 돌아가 간식을 챙겨 주었는데 식성도 까다로워 멸치를 주어도 몸통은 먹되 머리는 먹지 않는 고급진 냥이 었다.
고냥님은 상당한 미묘였는데 그 미모가 인간에게뿐만 아니라 동네 수컷 냥이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지켜본 임신과 출산만 세 번이 넘었던 것. 오 마이 갓, 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본능 제어가 되지 않아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은 개체수 조절 문제뿐 아니라 모체의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몇 번의 임신과 출산에도 건강해 보였는데, 비결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차지한 것! 어느 날엔가 퇴근길에 치킨을 들고 차에서 내리면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질 않나, 통로 밖을 나서는 나를 보자마자 내게 돌진해오질 않나.(이건 정말 감동적이다ㅜ_ㅜ) 이런 녀석을 보면 동물에게 호의를 받고 있다는 순수한 기쁨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만 애정을 주는 줄 알았던 녀석이 동네 중학생들 무리속에서 배를 까고 뒤집기를 반복하던 모습을 볼 때 들었던 약간의 배신감이란.
질투는 잠시뿐, 이곳의 주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고냥님을 살피는 것에 안심이 되었고, 동네 여중생들은 녀석을 위해 집을 만들어 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몇 번의 출산을 반복하는 중 한 번은 통로 지하실에서 새끼를 낳아 천장의 파이프에서 새끼를 양육할 땐 (위쪽은 천적이 없어서일까? 천장에 연결된 파이프에서 새끼를 키웠다) 혹시나 그 꼬물이들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했고 새끼들이 울 땐 동 전체가 울리는 바람에 민원이 들어올까 심장이 쫄깃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입을 꾹 닫을 정도로 녀석을 보호할 만큼 이 녀석은 이미 구역의 귀염둥이였다. 밥을 주지 말라는 관리실의 경고문 부착에도 불구하고 늘 출몰지역 근처엔 간식거리나 사료가 있었다. 먹을 것이 풍족해서인지 쓰레기를 헤집거나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이쯤 되니 경비아저씨도 포기하신 듯했다.
꼬물이었던 새끼들이 청소년쯤 됐을 때 이미 독립을 한 건지 어미와 함께 있지 않길래 의문을 가졌던 어느 날 마주친 녀석을 보니 녀석은 다시 임신을 했더랬다. 어떻게든 잡아 중성화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전에 이 아이를 구조한답시고 지인의 집에 들였다가 높은 곳이란 높은 곳은 다 올라가며 발작을 하길래 포기했고 여기저기 방법을 알아보다 동물농장에 자세한 사연을 적어 제보했다. 담당자 연락이 왔고 고양이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였으나 지인의 집이라 집주인인 지인이 주로 사진을 찍었는데, 또 하필이면 약간의 다툼이 있을 때라 지인의 연락처를 주며 연락을 해보라고 했는데 지인이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사이 녀석은 또 자취를 감추었고 제보 건은 흐지부지 되었다. 보이지 않을 무렵 감이 왔다. 어느 날 녀석은 또 임신해서 돌아오겠구나..ㅜㅜ 어미의 삶이 그러하듯 임신하고 꼬물이들을 돌보는 시기엔 항상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해져 있었는데 그 모습 마저 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애써 나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기가 몇 달이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근 일 년 만에 이 녀석을 다시 보게 된 것! 아.. 근데 배를 만져보니 불룩하다. ㅜㅜ
이 녀석.. 추운데 새끼를 낳을 때가 되니 밥을 많이 줬던 기억이 있는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는 건 동네 수많은 캣맘들 중 한 명이 되는 것 밖에. 얼굴이나 자주 보여주렴 이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