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때문일까? 나는 어딜 가도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세 보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유 없는 미움을 받을 가능성이 꽤 높은 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나에 대한 편견이나 소문이 부풀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뭐 인간의 본능을 고려하자면 나쁜 쪽인 경우가 높을 것이고 실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짜 신입사원 시절 이었던 어느날, 대표이사의 애정 어린 부름으로 갑작스럽게 전 직원 앞에서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나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무섭다.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돌아버릴 것 같다. 일단 긴장감으로 인해 염소톤으로 자동 변환된 목소리로는 아무리 멋진 말을 하더라도 아 저 사람 무지하게 떨고 있구나 라는 것만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긴장감의 전파도가 엄청나 염소 목소리의 하이라이트를 찍을 때쯤이면 상대를 웃기게 만드는 능력까지 있다. 덕분에 면접에서도 떨어지고, 목소리를 다스리려 하다 보니 콧구멍도 벌렁거리고, 그걸 면접관이 지적해주는 등 수난의 시대를 겪어왔다. 나에겐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그런 내가 말해 무엇하랴, 당연히 이야기나 가십의 중심이, 혹은 그 곁다리라도 되는 것이 싫다. 감정에 휘둘리는 개복치형 인간이다 보니 사랑받겠다는 꿈은 고사하고라도 누군가에게 미움받기도 싫은, 그냥 무채색처럼, 투명인간처럼 살고 싶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타인의 공격과 상처에 의해 열정적이다 못해 불타오르던 내 마음의 에너지가 점점 옅어지다 못해 잿더미 같은 회색이 된 것 같아 열 받는다. 다시 감정적이며 (이건 지금도 충분한 듯) 박애주의자 같은 사랑이 충만한 사람으로 바뀌어야지.
최근 재미있게 본 '회사 가기 싫어'라는 드라마에서 윤희수라는 팀장에 대해 사적인 소문이 돌고, 이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을 다룬 에피소드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다. 개인마다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포인트였지만, 너무나도 인상적인 장면이라 이걸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라는 감정을 들게 할 정도로 나를 감탄하게 만든 장면은 한진주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요지는 나는 왜! '한진주' 같은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 에피소드가 두고두고 생각난다.)
그럼 이전 직장생활에서 마음고생도 좀 덜했을 텐데.
윤희수 팀장의 사적인 소문에 대해 한진주는 이렇게 말한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은 이렇다)
"그거 다 능력 있으니까 생기는 소문 아닌가요? 뭐 일로는 깎아내릴 게 없으니까"
한술 더 떠 이렇게 묻는다.
"혹시 저에 대한 소문은 없나요?"라고 묻는 그녀. 아! 사맛디사맛디 사맛디 아니할세 나의 지난날이여!!!!!!!!!!
내가 저 대사를 알바 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첫 직장시절 알았다면, 아니 그것도 양보해서 상처 받은 대리 시절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잘나지도 않은 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들을 그저 불쌍히 만 여겨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정신승리라도 하며 좀 덜 상처 받았을 텐데.
사실 난 알고 있었다.
나의 윗 사수가 전혀 경험이 없는 분야의 팀장으로 와서 고생을 하는 중이며 그것이 그의 열등감이 될 수 있음을, 그 열등감이 결국 나를 향한 폭력이 되었음을.
업무가 전혀 겹치지 않는 여직원 몇 명이 계속 내게 딴지를 거는 건 나에게 자격지심을 가져서이고, 자격지심을 가진 그녀조차 부러워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친구라 쓰고 꼬봉이라 읽는' 이의 충성심 같은 열등감과 정체모를 감정들의 뭉친 반죽 같은 것이 나를 향한 것일 뿐이었음을.
첫 직장에 다니던 시절 출근길, 카풀하던 이들 중 앞자리에 앉은 내 뒤통수를 갈기던 법대를 나온 그녀의 부들부들은 실은 '더럽고 치사하고 어려움에도'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부러움이었다는 것을.
결국 그 모든 것은 그들의 문제였을 뿐 내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실제 퇴사를 할 때 내게 자격지심을 느꼈다고 말하는 직원을 보며 그 솔직함에 어이가 없고 웃기기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그 천진난만한 용기가 부럽고 가상하기도 했다. (사실 나중엔 '자격지심'의 뜻을 정확히는 아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긴 했다.)
나도 한진주처럼 와일드한 똑똑함을 가지고 싶다.
경험을 마음에 쌓아, 이마에서 광선이 나온다는 제3의 눈을 가지고 싶다.
그리하여 좋아하는 것을 하며 둥가 둥가 재밌게 지낼 연구를 해도 모자랄 이 세상에서 낮은 자존감이나 시기심같은 것들을 '악'을 퍼뜨리는 것으로 때워 생존법으로 삼는 이들을 향해 맘껏 외쳐주고 싶은 것이다.
폭발하든가 말든가 열등감이여!
그건 그저 그대들의 몫일뿐.
나는 그냥 이렇게 살겠으니, 그대도 알아서 살기를.
삶은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결정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