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은 호르몬의 작용이라는데 기질적으로 수면에 예민한 나는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낮잠 네 시간 잔 것이 3일간 잠든 시간의 전부. 무료한 시간에 뭔가를 해볼까 하면서 죽어도 공부는 하지 않는다. 이 책 저 책 들춰보거나 의미 없이 티비를 봐도 종일을 틀어놓으니 재미가 없다. 그러다 발견한 명작!!
바로 2018 KBS 드라마 스페셜.
정말 난 이 모든 시리즈를 만든 분들, 존경하고 좋아하고 마구 사랑해드리고 싶다. 한 시간의 단편들을 어쩜 이렇게 재미지고 멋지게 잘 만들어내는지. 그들의 노동은 아마 신성한 노동 베스트 안에 들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대본들을 뽑아 만드는 것이라 작품성 보장 확률이 높으므로 주저 없이 TV 다시 보기로 봤는데 아.. 내가 왜 이걸 몰랐을까 자괴감 들고 괴로워.. 할 정도로 한 편 한 편이 명작이다.
일단 첫 화가 너무 대박이라 (한국형 로코!) 오랜만에 소리 내어 빵빵 터졌는데 그건 다음 이야기로 길게 풀기로 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너무 한낮의 연애'였다. (2018 KBS 드라마스페셜 4화)
드라마는 제길스럽게 너무 잔잔해서 아름답다.
사진의 필터 보정을 한듯한 단란한 색감들, 그 속에서 더 빛나는 풋풋한 청춘들의 멜로.
그래서 더 담백하게 와 닿는 풍경과 인물들의 대사.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에 무욕한, 그래서 더 아름답고 어딘가 기괴스러워 보여 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여자 주인공 양희는 필용 선배에게 햄버거를 먹으며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선배를 사랑한다고. 오늘 선배를 사랑한다고. 내일은 모르겠지만, (사실은) 알 필요 없으니 오늘 사랑한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 잔잔하다. 그저 다음날 "오늘은 어때?" 하고 물으면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답할 뿐이다.
그렇게 그 둘은 오랜 시간 햄버거를 먹으며 연애인지 아닌지 모를 날들을 보낸다.
양희가 사랑을 말하는 여러 날 동안 필용은 그녀의 사랑을 물을 뿐 아무 말하지 않았다.
필용이 '나도 너 좋아해'라고 쓴 고백의 카세트테이프를 준비한 날 그녀는 사랑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전부 사라져 버렸다고.
햄버거를 먹다가 갑자기, 이것은 연애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하였기에 이 상황이 차인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양희의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필용의 행동은 우리가 잘 아는, 이별에서 흔히 나오는 인간의 패턴들과 비슷해 공감간다.
늘 자신을 사랑한다 말해줄 그녀의 마음을 하루아침에 잃은 필용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여 그녀를 설득하려 하고, 이후에는 비겁함과 폭력을 마음껏 내비친다. 보통 상실의 과정이 그러하지 않나. 남자는 무언가를 상실 한 순간 그 사실을 설득하고 부정하고, 이후 폭력적인 성향을 비추거나 상대에게 휘두르고, 여자는 분노와 좌절 뒤 보통 '어쩔 수 없는' 체념을 하거나. (보통)
양희에게 구구절절 못되고 찌질하기 그지없는 말을 읊은 필용은 그날 집으로 돌아와 심하게 앓아눕는다.
아기 강아지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엾게 앓아누운 필용은 안쓰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엄마는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 아프면 어떻게 했냐고.
그들의 연애 아닌 연애는 그렇게 끝났고, 우연히, 아주 우연히 19년이 지난 후 둘은 재회하게 된다.
재회 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둘이 만났던 자리에 앉아 필용이 울 때, 양희가 평론가에게 나무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겨우 자신의 말을 내뱉을 때 나는 그만 소리 내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 길로 비를 맞고 슈퍼로 달려가 캔 맥주 네 캔과 큰 피쳐를 사와 빨대에 꽂아 마시며 드라마를 보고, 또 보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약간의 설정은 다르지만 대부분이 소설 그대로이다. 그리고 다다음 편 단막극 '이토록 오랜 연애'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구간이 있다. 두 편 다 생각할 거리도, 오픈 결말 같은 마지막도 아릿하게 좋다.
배우의 라인업도 굉장하고 연기 구멍이라고는 1도 없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양희 역의 최강희는 젊은 날의 배우 박세완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으나 남자 배우의 젊은 역은 뮤지컬계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전성우, 19년 후는 고준 배우라 싱크로율이 매우 떨어진다. 고준의 섹시한 비염 섞인 저음과 다이어트 킹콩스러운 피지컬을 매우 매력적으로 느끼지만 같은 역의 배우로 보기엔 이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성우가 너무 곱단 말이다..
양희는 그 무엇에도 무욕해 보이지만 그것이 상처 받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악담에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서 울 뿐이고, 연극평론가의 악평에 혼자 마음을 삭일뿐인, 그저 조용한 삶을 사는 '나무' 같은 사람이다. 나무 같은 그녀가 말한 '사랑' 은 얼마나 진심 어린 사랑이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다.
그토록 모든 것에 무심하여 무욕하려면 어린 시절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 체념을 무기로 살아가는 타입이거나, 태생적 기질이 강해야 할 정도로 드물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도, 아픈 건 아픈 것이며 상처는 상처인 것이다.
상대가 반응이 없다고, 상대를 더 아프게 찔러봐서는 안된다.
무욕한 스무 살의 양희가 40대가 되어 말한다. 이 나이쯤 되면 이런 것 없이도 괜찮을 줄 알았다고.
양희는 사실 모든 욕구들을 꾹 눌러오고 애써 참고 무시하며 살아온 것만 같다. 혹은 나무처럼 바람결에 잎사귀에 다 흘러 내려보내오며 살아온 것일까.
나 역시 서른을 넘고 보니 20대의 나에게 '별 다를 것 없으니 그냥 좀 더 마음대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면 양희의 저 말은 어쩌면 마흔의 내가 30대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할 말일 수 있겠지. 그러니 괜찮아야 한다는 혹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야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원작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강박
꼭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
너무 오랜 날 집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강박
외로움은 혼자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는 강박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은 끝까지 따져야 한다는 강박
끝까지 따지지 않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는 강박
사랑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의식, 아니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누군가에 대한 것인지도 모를 부채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