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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Aug 13. 2019

수영장에 따라간 엄마들

극성이라 쓰고 지극함이라 읽는다

잠의 주기가 불안정해서 맞춰놓은 수영 강습시간에 깼다가, 곤히 든 잠이 아까워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한다.

오후쯤 일어나 자유수영을 하러 가면 사람이 많지 않아 좋다.

오후는 보통 성인반이 아닌 아이들 수영 강습시간이라 아이들이 많아도 전용 풀만 사용하므로 다른 라인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내카운터 옆 오른쪽 입장 통로 외에 왼쪽을 통해 수영장으로 직접 가는 통로를 보았는데 튜브와 더미가 있어 구급 통로인가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유수영을 갔던 날 수영장 안에서 보니 그 통로에 부모들이 빼곡히 서 있는 걸 보았다. 부모들(이라 쓰고 대부분 엄마들)은 앉을자리도 마땅치 않은 그 자리에 서서 강습받는 자신의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영장 입장부터 강습까지 한 시간이 넘는데, 대단하다 싶었다. 실은 극성스럽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영 강습을 마치거나 자유수영을 하더라도 수업 시작, 종료 시간을 피해 샤워실로 가는 편이다. 그 시간대엔 샤워실이 혼잡해 일부러 피하는것인데 오늘은 어쩌다 보니 어린이들 종료시간에 맞춰 샤워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수영장을 바라보며 서있던 엄마들이 거기 왜 서 있었는지 드디어 알게 된 기분이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그 간이 통로이자 협소한 장소에 서서 강습하던 아이들을 지켜보던 엄마들은 아이들이 강습을 마치고 샤워실로 향하는 순간 아이들을 따라 샤워실로 들어가 자신의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협소하고 샤워기 간격이 넓지 않아 옆의 사람이 샤워를 하면 물이 튈 그 거리에 서서 말이다. (엄마들은 옷을 입은체 따라 들어온다)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저 나이 때 이런 걸 혼자 했었는데 싶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니 요즘 세상이 어떤지도, 그래서 아이들 엄마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는 내가 엄마들 행동에 대해 혼자 판단하는 것도 웃기다 싶어 생각을 멈추고 내 샤워에만 집중했다. 물론 아이 한 명이 바로 내 뒤에서 샤워를 했고, 그 아이 엄마가 내 옆에 서 있었으므로 아이 엄마 옷에 물이 튈까 의식되어 몹시 불편했지만, 그녀도 내가 있어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 어쩌겠는가, 수영회원은 나, 고로 나는 여기서 샤워할 권리가 있는데. (TMI, 아이를 씻겨주러 들어온 온 엄마에 대한 배려는 다른 문제라 생각한다)


아이에게 내가 씻는 세제가 튈 것이고 아이가 씻어내는 비눗방울도 내게 튀었다. 아무튼 뭐 복잡한 시간대의 샤워란 다 그런 것이다. 알아서 샤워를 잘 마치고 요리조리 잘 피해 나와야 한다. 그 틈엔 아이들의 보호자이자 샤워 코치인 '옷 입고 따라들어온' 엄마들도 있다.


내 뒤에 있던, 대충 다 씻은 아이에게 아이 엄마가 말했다.

"비누 꺼내서 얼굴까지 닦아"

아이는 비누 용기에서 앞면이 장미잎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양의 하얀색 비누를 꺼내 요리조리 만져가며 비누를 조각하듯 조금 떼어낸 것으로 비누칠을 했다.


아이 엄마는 이미 아이 머리에 샴푸를 얹어 손수 거품칠까지 해 주고 아이가 샤워기를 틀어 흐르는 물에 헹구기만 하면 되도록 모든 과정을 마쳐놓았고, 대망의 비누칠은 마지막 단계였다. 꼭 비누칠까지 다시 해야 하나? 싶은 반감과, 저렇게 극성스럽게 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줘야 하는 건가, 싶게 보이던 행동에 대한 내 마음은 갑자기 방향 전환이 되었다. 그 아이의 비누가 예뻐서였는지, 엄마가 옆에 서 있는데도 조급함보다는 비누 모양의 예쁨에 심취할 수 있는 아이의 편안함이나 천진난만함 때문이었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저 아이에게 엄마가 살펴주는 저 손길은 혹여 지금 귀찮더라도 시간이 쌓일수록 지극한 사랑으로 기억되겠지,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엄마가 굉장히 미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은 굉장히 굳건하겠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가 올 시련을 견뎌 낼 무기가 될 마음의 근육도 굉장히 단단해지겠지, 자신에겐 언제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음을 무의식 중에라도 늘 기억하고 있겠지, 그러니까 시련이란 건 '조건 없고 당연한 엄마의 사랑과 지지'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여 세상 밖을 이겨내는 순간들이겠지.


수고로움을 이겨내고 씻겨주는 이 순간은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인생에 '늘 사랑받고 있음'을 저 깊은 곳에 새겨 넣어 어려움에도 쉽게 용기 낼 수 있는 힘을 만들어 가는 순간이겠지.



여러 명의 엄마가 같은 행동을 하는 공용 샤워실에서 나는 엄마들이 참 대단해 보였고 아이들은 굉장히 부러웠다. 내가 가질 수는 없을 그 감정을, 아이들은 듬뿍듬뿍 받아 몸도 마음도 건강하여 멋진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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