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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Aug 08. 2019

돌아본다

회색과 잔잔한 흑백이 어울렸던 나의 20대, 여행의 시간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작스레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인도에서 보냈던 사막의 밤, 뜨거운 햇살에서 나를 중국인이라 놀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걸었던 베오그라드 거리, 흐린 날 나를 몹시 센티하게 만들었던 프라하의 강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걸었던 이스탄불의 탁심 거리.


기억이 나를 찾아오는 순간이면, 온전히 낯선 시간과 장소에 있던 날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뜨겁지 않았으나 완전하지도 못했으며 무언가 바람은 있었으나 간절하지 않았다.

내게 20대의 시간은 상황이 다가오는 대로, 혹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찾아가며 살아왔던 순간들의 모음이다.

지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통과하며 살아왔을 뿐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안일하고 게으른 나에게 시간과 자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게 한 것은 늘 여행이었다.

완전한 타자가 되어서 낯선 곳에 홀로 버려지는 시간.

여행을 즐길 줄 몰랐던 여행자는 그저 낯선 곳에 스스로를 버려두었다.



내가 나에게 미안한 것은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나를 스쳐갔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거절들.

경계심 가득한 여행자는 현지인의 작은 친절조차 받아들일 줄 몰랐고, 사소한 인연과 우정의 기회조차 스스로 끊어버렸으며 사랑의 신호마저 흘려보내고 능동적으로 거부했다.


내가 나에게 미안한 것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이유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보냈던 수많은 밤들.

용기 내 마주했던 시간들은 대게 즐거운 기억보다 그다지 기쁘지 않았으므로 숙취처럼 견뎌야 하는 후회가 많았다. 그 시절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기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했다. 사랑하고픈 스스로를 속여가며 사랑을 허락하지 않음으로, 나는 나조차 돌보지 않았다.



시공간을 넘어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된다면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것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는 아니다.


다만 조금 어린 나에게, 스스로의 내면과 자유의지를, 감정을 솔직하게 살 그 목소리 따르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해도 뭔가 크게 나빠지거나 위험해지지 않는다고, 좀 더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근거 없는 낙관이라 하더라도 나를 좀 믿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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