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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Aug 05. 2019

용기 없는 자의 고백

속이 쓰려 소화도 안 되는 소심한 짝사랑러의 슬픔

비겁하고 비겁하다.


시인 이상은 조용한 거울 속의 세상도, 왼손잡이의 자신도 보았다지만, 나는 겨우 고개를 드는 것도 어려워 어쩌다 용기 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나의 내면을 직시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나의 민낯은 비겁하고 용기가 없다.


다가오는 고난에 어찌할 줄 모르다 그냥 피하는 겁쟁이가 된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겠지.

그런 내게 한낱 위로는 내가 비겁한 위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




밤낮이 가끔 바뀔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반 백수 삶이 가져다주는 바이오리듬 파괴다.

불면증도 심하게 앓았던 터라 수면 패턴이 바뀌면 걷잡을 수 없다. 기절 직전까지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난 뒤 곤한 잠에 빠진다.


어느 새벽, 잠이 안 와 그날도 24시간을 보낸 뒤, 다시 9시간을 더 보내고 나서야 드디어 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던 날이 있었다. 33시간 만의 수면. 아침 여섯 시쯤 잠이 들었는데, 자다 꺼진 에어컨에 폭염경보가 더해진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서 9시간을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심지어 불편한 자세로 자다 일어났다.


살다 아주 가끔 그런 날 있지 않나, 내가 꿈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꿈을 조종하는 것 까지 가능한 것 같은 그런 꿈을 꾸는 날. 대게 행복한 기분의 꿈을 꿀 때 말이다. 그날 역시 인생에 아주 가끔 겪는 그런 일을 겪은 날이었다. 내가 꿈의 컨트롤러가 된 듯 꿈이 아주 연속적으로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꿈이 얼마나 생생하던지 깨고 나서 한참을 가만- 히 있었다. 그리곤 그 기억이 행여나 휘발될까 너무나 아까운 마음이 들어 바로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 꿈의 단편 이나마 기록 해 두었다.


1. 강신주가 (그 강신주 맞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철학자라 쓰고 Ex 짝남이라 읽는다) 꿈에 나왔다.

2. 내가 사는 지역 근처 강의를 왔는데, 주최 측과 이례적으로 뒤풀이를 가는 것이었다. 왜인지 내가 그 뒤풀이 장소에 같이 참석하고 있었다.

3. 내가 숙소까지 배웅을 해줬다. 근데 분위기가 몹시 꽁냥 거리는 분위기였고, 숙소까지 같이 들어가게 됐다.

4. 옷 중에 빈티지스러워서 잘 입고 다니는 편한 반팔티가 있어서 항상 여행지에도 가져가는데 (주로 잠옷으로 입음, 별생각 없이 잘 입던 중 발리에서 만난 친구가 "너 교회 다니니?"라고 해서 왜 하고 물어보니 걸려있던 그 티셔츠에  "Jejus will love you"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었다 젠장. 민망하긴 한데 너무 웃겨서 한참 자지러졌던 적이 있다. 무튼 것도 모르고 한참 잘 입고 돌아다녔는데) 꿈속에서 내가 그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박사님이 비슷한 티를 입고 있었다. 그 꿈에선 '나'가 아니라 '우리' 같은 분위기였고, 저 위의 이야길 해줬더니 그게 뭐가 웃긴 이야기라고 막 시작한 연인들처럼 까르르 웃어제꼈다. 이야기가 웃겨서, 비슷한 티셔츠를 입은 게 신기해서, 혹은 내용도 기억 안나는 이야기들을 서로 하면서.

 깔깔대면서 소파에서 뒹굴뒹굴 거렸는데 그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 나도 너무 행복했다. 그 미소 말이다. 시니컬하거나 억지로 'ㅎㅎ' 하는 그 티용 미소 말고 강연장에서 보이는 가끔 보이는 그 진짜미소를 보이면서 말이다.



꿈의 분위기와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행복해서, 깨고 나서도 아주아주 여운이 찐- 하게 남는 꿈이었다.

깨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이게 정말 꿈인가, 꿈이란 말인가. Aㅏ..........................

영화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담으로, 아주 옛날 공연 관련된 알바를 하다 보니 그때 공연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 요즘 티브이에 나오고, 어떤 배우는 주 조연급으로 나오기도 한다. 잘된 이들을 보니 신기한 마음이 들고 반갑기도 하다. 나는 정동화라는 뮤지컬 배우의 팬이었는데 그 배우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매력적인 배우가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다. 바로 감방생활 헤롱씨. 외에도 몇몇 얼굴들을 보면 반갑고 신기하고 또 잘됐다 싶고 그렇다. 아무튼, 그들을 보면서도 나는 와 신기하고 잘됐다 정도였지 뭐 아는 척을 굉장히 하고 싶다거나 팬으로서 나만 알던 배우를 뺏긴 것 같다는 그런 느낌조차 없었다. 그런 나를 뒤흔든 대중매체 스타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강신주 박사님이었던 것이다. 나와 나이 차이는 물론 직업 환경도, 인생의 스펙트럼도 너무 달라 접점이라곤 전혀 없을듯한 저 멀리 있는 사람.



처음 그의 글을 읽고, 티브이에서 보고 책을 볼 때만 해도 실은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 아니 책은 잘 팔릴 줄 알았으나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강연에도 소위 '잘 팔리는' 인기쟁이가 될 줄이야.. 그리고 그의 팬이 이렇게나 많았고 또 많아질 줄이야.

나는 그의 대중 마케팅 전략이라는 거미줄에 걸려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마음만 끓이다 마그마가 되어서 활활 타 죽을 것 같다.


바라볼 수 없는 여우의 신포도 같은 존재에게 비겁한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조건 피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할 만큼 해 보았다. 편지, 선물, 이메일 등등.. 그러나 아무런 회신도 얻지 못했던 나는 어쩌면 내 욕심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이 그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상대가 내 편지나 마음 표현으로 기쁘면 그만이고 더 관심이 있으면 연락이 왔을 것이며 아니면 어쩔 수 없다,라고.

 머리로는 쿨하게 생각했으나 어찌 사람 맘이 뜻대로 되더란 말인가. 집필실을 수소문 해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 어느 강연을 보고 관뒀다. 그 강연에서 어느 아주머니 한분께서, 그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강연장을 약간의 대환장파티로 만들고 그가 애써 수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에게 나와 그 아주머니가 뭐가 다르겠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그날 싸인을 해주면서 한 달 전 나에게 이메일을 알려줬다는 사실을 전혀 잊어버린 듯 첨 보는 사람 대하듯이 했다.. 혼자 상처받음)



이후 최대한 회피 전략을 쓰며 집에 있는 그의 책은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모아 온 포스터들은 베란다로 치워놓았으며 티비도 예능과 드라마에만 채널 고정해놨다. 그렇게 평온하던 어느 날, 티브이를 켰는데 3부작이라며 그분이 나와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도서관에는 이번 달 근처에서 열리는 그의 강연 베너가 떡 하니 서있었다. 일부러 도서관에도 가지 않았다. 생활 반경을 좀 바꿀 요량으로 수영장에 등록했다. 수영장에도 같은 베너가 서있었다. 유명인을 맘에 둔다는 건 그리고 또 잊는다는건 얄궃다. 못된 운명처럼 가끔은 도망갈 곳도 없다.

다시 해외 방랑을 해야 하나.......? 그만큼 그에 대한 마음 정리가 안된 거다. 이놈의 미련.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호텔 델 루나'를 보며 주인 장만월의 '벌'을 생각한다. 한 나무에 운명이 붙박여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삶이라는 벌, 어떤 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붙박여 벌을 받는것이 나의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외로움이 벌이라면, 나는 그 벌에 너무나 공감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뜨거운 사람인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돌진할 수 있는지, 이토록 절절하게 내 존재조차 모르는 누군가 때문에 혼자 마음을 끙끙 댈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가 낯설도록 몰랐던 것이다.



팬서비스나 나쁘던가. 어떨 땐 기억도 해주고 이야기까지 나누니 (무려 포옹도 했다!! 한손 아니고 두 팔로 딥하게ㅋㅋ 어쩌다 보니 커피도 같이 마심) 희망고문은 아니라도 혼자 소중히 기억하고 간직할만한 추억이 있어 더 놓기 어려웠다. 자칭 위대한 철학자라는 그는 더욱더 커지고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더욱더 넘사벽이 되어가는 상대방을 보며 허탈함 보다 어찌할 수 없 뭉그러진 마음이 애달프다.



혼자 가난한 철학자의 아내가 될 결심까지 했었는데.. 아 손자의 손자 이름까지 하..(생략)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걸까? 아님 친일 앞잡이 정도 됐었나.. 하.... 술 끊었는데...........ㅠㅠ

글을 쓰다 보니 술 생각이 간절하다. 날 이렇게 애달프게 한 사람은 중2 첫사랑 오빠 이후 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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