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니스시나 Apr 04. 2024

애착

많이 사랑해 주세요.

둘째 아이에게는 잘 때는 물론이거니와 여행마다 항상 데리고 다니는 애착 인형이 있다. 육아하는 집에는 하나씩 있다는 이케아의 갈색 레트리버 인형이다. 아이는 멍멍이라고 부른다. 똑같은 인형이 큰 아이에게도 있다. 자다가도 둘째는 깜깜한 방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멍멍이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손에 언니의 멍멍이가 잡히면 휙 던져버리고 자신의 멍멍이를 잡는다. 인형을 '안는다'가 아니라 '잡는다'. 왜냐면 정확히 멍멍이의 꼬리가 애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새벽 잠결에 안방을 오는 경우에도 멍멍이의 꼬리를 잡고 나타난다.

둘째의 멍멍이는 우리와 함께 국내 각지, 제주도, 일본까지 언제나 함께 다니는 중이다.

나는 '애착'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면 인형을 만든다. 일전에 이야기한 나의 버려진 뜨개 인형들도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었다. 최근에 만든 봄쑥이는 내 가방에 매달려 외출을 함께한다.

최근 뜨개 작업들


애착의 대상이 있었는가.

있었다.

만화 '피너츠'에는 스누피, 찰리 브라운, 그리고 그의 친구 라이너스가 등장한다. 라이너스의 모습이 영판 어릴 때의 '나'이다. 나는 늘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빨았고, 엄마의 스카프가 있어야만 잠이 들 수 있었다. 항상 만지는 스카프라고 '만지'라는 이름도 있었다. 왼손 엄지와 검지로 노상 문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와 냄새에 집착했다. 사각사각... 그리고 은은한 엄마의 냄새. 만지는 너덜하고 해진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었다. 긴 시간 나와 함께한 바로 그 대상.

친척 어른들은 제사나 명절에 나만 보면 그 습관을 두고 놀렸다. 엄지 손가락이 더 작을 거라고 어쩌냐며. 억지로 양손가락을 나란히 비교하게도 했다. 친하지도 않은 어른들의 지나치는 말들과 장난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지금이라면 뭔 상관인데요?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뭐 지금 나의 양손 엄지는 아주 건강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경상남도 청도였나? 아빠 고교 동창의 가족들과 동행하는 전혀 즐겁지 않던 여행이었다. 민박집의 어른들은 시끄러웠고 나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곳 민박집에 '만지'를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만지'를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도 아빠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기차는 출발했고 엄마 아빠도 별 수 없었을 게다. 지금의 나라면 아이가 인형을 두고 왔다고 그 숙소에 다시 갈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잃어버린 나의 '만지'.

기차 안, 눈물, 충격, 슬픔. 아주 단편적이지만 강한 이미지다.

엄마는 다른 스카프를 나에게 주었고, 아빠는 못마땅해했다. 그 습관을 고쳤다? 사라졌다? 뭐든 더 이상 스카프나 손가락 없이 잠을 자게 된 것은 초등학교 2, 3학년 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씩 두 아이와 함께 종종 인형을 만들었다. 직접 인형을 만들면 아이들에게 특별할 것 같아서다. 어린 내가 '만지'로부터 느낀 안정감이 나쁘지만은 않았기에 아이들에게도 특별하고 아끼는 대상이 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집중할 거리를 주어야 육아가 편해서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상상한 대로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에 참여한다. 신나서 이름도 붙여준다. 아델라, 꽃순이, 발리... 등 몇 년이 지나도 애들은 그 이름을 잘도 기억한다. 고마운 일이다.

나에게 '만지'는 헤어짐의 슬픔으로 마무리된 집착의 대상이었지만 너희들에게는 즐거움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애착의 대상으로 기억되기를.


아이들과 함께 만든 인형들


[2018년 여름 일기 중]

.......

"이거 실패한 거 같아... 그러니 여기 솜 빼서 다시 만들 때 넣을까?"

"안돼!!!!! 절대 안 돼!!!! 원래 인어공주는 언니가 많아. 얘는 아델라야. 절대 뺄 수 없다고!!!"
이럴 때 모자라는 엄마 티가 난다. 기술적인 부분이야 뛰어날 수 있지만 순수함에 있어서는 성인은 아이를 못 따라간다.
꼬맹이는 두 번째 인형을 만드는 내내 첫 번째 날씬이 아델라를 옆에 꼭 끼고 있다.
못난이네, 실패네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 미안하다. 반성한다.
엄마도 아델라를 예뻐해 주기로.
날씬이든 통통이든 귀염이든... 아이들은 같이 만들었다는 시간에 의미를 두는 거 같다.
아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어떤 것이든 함께 해보면 즐거운 추억이 된다.
그리하여, 나의 다음 숙제는 "요정"이 되었다.


2018년 처음 함께 만든 인어공주


작가의 이전글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