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와 밀도의 차이
나는 평생 가늘고 마른 몸을 가져본 적 없다. 게다가 나잇살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낳은 주변 지인들의 하나같은 생각이 있다. '따님아, 어찌 그리 너만 빠져나갔냐?' 싶은 것이다. 출산 후에도 몸은 만삭의 무게를 잘 유지한다. 내 몸무게에 회귀본능이란 없다. 한 해 두 해 지나니 소화력과 기초 대사량도 저하된다. 최근 2-3년 동안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경도 비만이 뜨기 시작했다. 눈물 나는구먼. 작년 여름부터 내 몸을 위해 공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케이크가 당길 때가 있다. 순간의 쾌락이냐, 일생의 건강이냐 하는 물음 앞에서 부끄럽게도 대부분 나는 패배한다. 그렇게 다이어트는 내일로 미뤄진다.
이 달콤함의 유혹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빠와 엄마의 잦은 갈등과 다툼은 어린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반가웠던 기억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몇 번의 '크리스마스이브'가 이에 포함된다. 버터크림이 듬뿍 발린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퇴근하는 크리스마스의 아빠이다.
초콜릿 케이크, 시장에서 사 온 후라이드 치킨과 과자가 차려지는 크리스마스 저녁.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자, 동생의 생일이었던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었다. 아마도, 아마도 피로 뒤에 당기는 케이크가 주는 행복은 여기부터 시작이지 않았을까.
"그거 제 돈 주고 산 거 아니다. 회사에서 받아 왔던 거지."
아빠가 돌아가신 뒤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못마땅하게 떠올리셨다. 그리고 말끝에 낮은 한숨이 붙는다. 나는 웃는다. 왜인지 요즘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과거의 아빠를 떠올리며 투덜 하는 엄마가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물론 나도 이미 알던 사실이다. 하지만 10살 이전의 나와 여동생들에게는 그 케이크가 어디서 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빠가 손에 우리 선물을 들고 왔구나 그것만으로 그저 따뜻할 뿐인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하다 보면 케이크 이미지가 자주 떠오른다. 그 느낌이 매우 사적인 감정이라 독자를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감성과 느낌으로 접근해 보시길 기대하며 이어간다.
나는 사슬 뜨기로 선을 하나 만들었다. 이제 면을 만들 차례이다.
면을 만드는 방법에는 빼뜨기, 짧은 뜨기, 긴뜨기, 한 길 긴뜨기, 네 가지 기초 기법이 있다. 이 기법들은 높이와 밀도감에 차이가 있다. 높이가 낮고 밀도가 쫀쫀한 기법부터 나열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 가지?
어떤 촉감으로 만들고 싶지?
아, 케이크 한 조각 먹고 싶네.
대충 이런 뚱딴지같은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바삭 굽힌 쿠키나 파이시트부터 필링을 채운 파이, 진한 초콜릿 케이크, 녹아 없어지는 생크림 케이크까지 단면 높이가 점점 높아지면서 식감도 부드러워진다.
빼뜨기는 납작한 쿠키나 파이 시트로 비유하겠다. 가장 촘촘하고 낮은 높이의 단으로 면이 채워진다.
빼뜨기는 성질이 단단하여 모티브를 이을 때나 테두리 마감 작업할 때 주로 쓰인다. V 모양의 고리가 층층이 쌓인 패턴이 예뻐 보여서 빼뜨기만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아래 티코스터가 면사를 사용하여 빼뜨기로 만든 것이다. 아직 초보 단계라면 코를 만드는 연습을 하기에도 좋으니 빼뜨기로 작은 소품을 만들어 보시길 권한다. (동영상 참고)
풍성하고 꾸덕한 필링이 채워진 낮은 파이는 짧은 뜨기가 떠오른다. 고리 하나, 즉 코 하나를 기둥으로 면을 만들어 간다. 밀도감 있게 채워지고 색을 바꿔도 가장 자연스러워서 나의 최애 기법이다.
시트가 컷팅되어 시럽이 발린 일반적인 버터크림 케이크는 긴뜨기로 상상한다. 고리 두 개를 기둥 높이로 하며, 짧은 뜨기보다 느슨하고 더 빠르게 면을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 길 긴 뜨기를 할 때에는 시트가 두세 번 컷팅되어 사이사이 크림으로 채워진 부드러움 끝, 생크림 케이크가 떠오른다. 긴 뜨기 중간에 고리를 한 번 더 넣어주는 기법이다. 바늘에 중간 고리를 몇 번 더 감느냐에 따라 두 길 긴 뜨기, 세 길 긴 뜨기로 기둥이 높아진다.
이 기초 기법들은 아주 쉽다. 손에 익숙해지고 기호까지 익히면 이제 본격적으로 만들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웰컴!
어제는 주말을 핑계로 온몸을 달콤하게 만들었다. 다이어터의 양심이 속삭인다.
"배 안 고프지? 이제 운동 좀 해야지?"
내일은 날이 춥다니 집에서 홈트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