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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스시나 Jan 30. 2024

'BASIC'의 힘, 짧은 뜨기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다.

기초, 기본의 힘은 강하다. 작업을 할 때에도 어려운 기법보다는 가장 기초된 기법이 중요하다.

일전의 글에서 소개한 뜨개의 기초 기법으로 텐션과 손맛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결과물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슬, 빼뜨기에 이어 이번에는 짧은 뜨기이다. 역시 쉽다.

나는 짧은 뜨기가 소재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가능성을 가진, 쉬운 기법이다. 그다음 단계의 수많은 기법들에 가장 기초 방법이 된다.

천천히 함께 해보시길.


바늘에 고리가 하나 있다.

첫 한 코는 기둥 역할을 하도록 건너뛴다.

바늘을 두 번째 코에 넣는다.

바늘에 실을 감아 뺀다.

이제 바늘에는 두 개의 고리가 있다.

바늘에 실을 감는다.

감은 실을 두 개의 고리 사이로 뺀다.

코가 하나 만들어지면서 내 바늘에 고리가 하나 있다.


이 과정의 반복이다. 아주 단조롭지만 한 층 씩 면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전시장의 그림들은 항상 고요하다. 특별히 자신을 내세우겠다고 시끄럽게 떠들거나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는다. 그저 전시장 한 벽에 기껏해야 액자라는 옷을 입고 걸려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좋은 작품은 빛을 낸다. 어려운 평론이나 의미는 모르겠다. 그러다 어떤 작품 앞에서 문득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나에게는 좋은 작품인 것이다. 어떤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그냥 턱! 하고 와닿았습니다'라고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이틀 전 친구와 장욱진 회고전을 다녀왔다.

1957년 작 '나무와 새'를 시작으로 감상하는 내내 그러했다. '자동차가 있는 풍경', '아이', '팔상도', '진진묘'...

어찌 그리 비어있는데 애정이 가득하고, 유머러스한데 깊을 수 있으신가요?


나무와 새 1957

평생에 걸친 에너지,

무심하게 보이는 획, 단순함,

툭툭 던져둔 모티브들이 주는 조형의 미학,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마음,

이 모든 것이 보는 이에게 자연스레 전해진다.

생전에 남긴 글에서 장욱진은 자신을 완전히 비워낸 뒤 몰입의 단계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 노상 새벽 걸음을 즐겼다고.

장욱진의 작품을 나의 글에 빌려옴이 가당치도 않지만 아주 아주 진실로 닮고 싶어서임을 미리 밝혀둔다.

"저 정도는 나도 해."라는 오만은 버려야 함이다. 덤벼보면 안다. 쉬워 보이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일시적으로 예뻐 보이기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예뻐 보인다는 것에는 깊이가 더해진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기술적인 노하우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단 회화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도, 업무에도,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참... 아직 갈 길이 멀다.


동행한 나의 친구는 전시를 함께 보기에는 너무 좋은 파트너다. 10대, 20대, 30대... 분야는 다르지만 항상 각자의 작업, 삶의 방향, 일상다반사를 나눈다. 서로의 유치한 흑역사를 공유한 채 나이를 먹고 있다.

우리는 전시장에 들어가면 늘 일행이 아닌 냥 헤어진다. 각자 실컷 감상의 시간을 즐기고 출구에서 다시 만난다. 이번 전시는 꽤 오래 걸렸다. 2시간 30분을 훌쩍 넘기고야 만났다. 친구 역시 표정이 상기되어 있다. 감상이 길어질 것 같아 밥을 멀미 나게 든든히 먹고 왔다는 친구의 준비성에 웃음이 났다. 점심 식사 대신 덕수궁 길 건너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친구와 나는 김환기 작가도 좋아한다. 한국의 근대 미술가들 디자인 감각이 너무 힙하다며, 자랑스럽다고 한참 감상을 나누었다.

오늘의 이 자극과 감동이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게 아쉽다는 나에게 친구는 대답했다.

"글로 남겨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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