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동생 윤경이는 늘 새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번엔 멜빵바지였다.
몸에 딱 붙는 하얀색 폴라티 위에 올라탄 멜빵이며 가슴팍에 커다랗게 있는 주머니 그리고 옆구리에 줄줄이 사선으로 늘어선 금속 단추들의 나열이 위풍당당했다.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생각했던 요술공주 밍키의 화려하고 짧은 프릴 스커트가 소망 화면에서 한순간에 아웃당했다.
명절이라 이미 엄마의 짜증과 화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옅은 미소와 특유의 고상한 콧소리로 맏며느리 역할극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엄마를 건드리면 터진다는 사실을.
멜빵바지는 그 시한폭탄을 터트리게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도 멜빵바지 사줘~~ 나도 이런 이쁜 바지 너무 입고 싶단 말이야.
왜 나는 만날 크고 안 이쁜 남자애들이 입는 옷만 입어!!!”
엄마는 터졌고, 덕분에 그날 식구들이 일찍 해산했다. 어쩌면 엄마도 바라고 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빠가 드디어 이혼이란 것을 하기로 결심했던 날, 네 식구는 돼지 갈빗집에서 외식을 했다.
그 길로 둘둘 헤어졌다.
희경이는 엄마 포대기에 업혀있었고, 나는 아빠 손에 이끌려 친할머니댁에 던져졌다.
할머니는 큰 손녀를 돌보다 지쳐 나를 작은집 그러니까 윤경이네 집에 데려다 놓았다.
작은 엄마는 나를 애써 이쁘게 치장해 주었다.
양 갈래머리를 예쁘게 땋아서 빨간색 리본 머리끈으로 장식해 주었고 그렇게 부러워했던 멜빵바지도 입혀주었다.
그런데, 그토록 열망하고 갈망하던 멜빵바지를 입었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내 어깨에 앉은 멜빵은 무거웠고, 위용을 드러냈던 동색 단추들은 화장실 갈 때마다 성가신 존재로 다가왔다.
예닐곱 살 꼬꼬마 여자아이에게 엄마 없는 순간은, 그 어떤 화려한 옷가지와 머리핀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그 보편적이고 당연한 진리를
나는 그때 이미 알아버린 듯하다.
내가 그토록 온몸에 덮고 싶었던 것은 멜빵바지가 아니라 다정한 눈빛과 손길로 무장한 포근하다 못해 축축한 엄마의 입김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