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가장 평온했던 순간을 기억하라고 한다면 여전히 그 장면이다.
맹장수술을 위해 그 차갑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잠들기를 기다렸던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당부에 마취과 의사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세요~’라고 답을 한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저 이렇게 아무런 방해 없이 푹~ 자도 될까요? 정말 그게 저한테 허락되었나요?
지효를 낳은 이후로는 오롯이 나만을 위해 아플 짬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대놓고 잠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더랬다.
잠을 푹 잘 수 있다니…
육아 16년 만에 완벽하게 자 버릴 수 있는 순간이 내게 왔음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부재로 고생하게 될 남편과 딸아이의 애처로움 같은 연민 따위는 단 한 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취에 이르는 10여 초의 짧은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달콤하고 짜릿했다.
스르륵 감기는 눈과 함께 까맣게 변하는 배경은 더 이상 세상의 어떤 것과도 마주하지 않아도 됨을 허락해 주었다.
전원 OFF
고통의 순간에서 리부팅을 하거나 전원 코드를 뽑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별에서 온 이 특별한 아이와 남은 생을 같이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싸한 느낌이 올 때면 누군가 내 전원을 꺼 주기를 희망한다.
나의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전혀 타협하지 않을 때.
머리로는 이러면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소리는 지금 울어버리지 않으면 너는 죽고 말 거야라고 강력하게 몸부림치는,
손가락 하나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그 상태.
나와 몸, 그리고 자아와 껍데기
그것을 칭하는 단어가 중요하지 않는 순간에 그렇게 찾던 OFF 스위치
그동안 삶의 무게에 짓이겨져 일어날 힘도 없었던 나의 몸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장기 하나의 소멸을 빌어 전원 OFF를 할 수 있는 허락을 신으로부터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그 대차게 허락받아 쉴 수 있었던 그 순간이 그립지만,
이제는 안다.
내게는 그 스위치가 없다는 것을. 그것의 작동은 오직 신에게만 허락되었다는 것을.
인간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 마취가 깨어나던 순간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이가 아파요. 이제 빨리 집에 가야 해요.’ 개뿔, 자라고 자리를 깔아줘도 푹 못 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