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만들기

by 김서울

아기가 잠들고 나면 드디어 고요한 밤이 찾아온다. 시간은 상관없다. 그 시각이 8시든 12시든 그 이후가 되어야 온전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보통 낮에 밀린 일들을 처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실에 쓰러져 눈이 뻑뻑하도록 핸드폰을 붙들고 시간 낭비를 하는데, 어제는 이유식 재료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주방을 나설 수가 없었다. 밤이니 시끄럽게 믹서를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칼로 다질 의욕은 없어 냉동실을 뒤져 꽁꽁 언 생선을 꺼냈다. 후기 이유식을 시작하고 야심차게 주문한 가자미가 냉동실에서 영원히 잠들기 직전이었다. 찜기에 물을 올려 가자미를 찌고 나니 아뿔싸. 이미 다 손질되어 살만 있는 생선인 줄 알았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고등어도 굴비도 좋아하지만 생선 가시 발라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고 번거롭다. 그래서 꽁치는 푹 익혀 뼈까지 꽉꽉 씹어먹고, 제주도에선 가시 없는 갈치조림집을 찾아 그 집만 간다. 물론 가자미 가시 정도는 쉬운 수준인 건 안다. 그렇지만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그런 내가 아기 먹이겠다고 생선 가시를 일일이 발라내어 한 끼 분량으로 소분해 정리를 한다. 물론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거창하고 거룩한 마음은 단연코 아니고,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가 없는 데다 또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가 봤다면 그렇게도 게으른 내가 지 자식이라고 챙긴다며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한다. 웬만한 음식은 다 집에서 뚝딱 만들어주곤 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떤 날은 그 일이 만만찮아 보여서 조금 자란 후엔 습관처럼 "대충 해. 뭐 안 만들어도 있는 돼. 있는 거 그냥 아무거나 먹자." 하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게 엄마를 생각해 주는 말인 줄 알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까 집에 아무거나가 어디 있나 싶다. 뭘 만들지 않고 '있는 거'는 있을 수 없었고, 요리하기 시작했으면 어차피 '대충'은 없는 거였다. 그런 책임 없는 말로 대충 마음만 가벼운 채 앉아서 주는 밥을 먹기나 하면서 잘도 그런 말을 했다. 역시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엔 모른다. 엄마라고 처음부터 요리를 다 잘했겠으며 매 끼니 다른 국과 반찬으로 식사준비 하기가 쉬웠을까. 하다 보니 늘었을 것이고 꼼짝 하기 싫은 날도 자식들 먹이겠다고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30년이 흘렀겠지. 그런 수고를 먹고 자란 나는 여전히 염치없이 엄마 음식이 좋다. 지난주엔 엄마 집에서 잔멸치볶음을 가져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밤중에 야식 대신 맨밥에 얹어먹기도 했다.


"나이 드니까 짠지 싱거운지 도통 모르겠어. 와서 간 좀 봐봐." 엄마가 요즘 요리하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럼 나는 늘 그런다. "맛있는데 왜." 엄마는 내가 성의 없이 대답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진심이다. 약간 짜면 짭짤해서 좋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재료 맛이 살아나 좋다. 예민하지 못한 나의 미각 탓도 있겠지만 나는 진짜 엄마가 해준 음식이 다 맛있다. 내가 한 음식을 먹고 자라는 내 아기도 언젠가 그 안에 가득 담은 사랑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겠지. 나도 하다 보면 늘겠지. 더 맛있고 건강한 걸 많이 해주고 싶다. 유치원에 가거나 학교에 가며 내가 모르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집에서 먹은 밥으로 배와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고 힘 있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캄캄한 밤에 조용히 내일 먹을 이유식을 준비한다. 가자미는 처음 먹는 재료니까 오전에 먹여야지. 알레르기 없이 맛있게 잘 먹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가시 없이 손질된 생선을 주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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