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검진

by 김서울

영유아검진을 다녀왔다. 3.6킬로로 작지 않게 태어난 우리 아기는 키가 맨 뒤에서 1등이라고 한다. 월령에 비해 작은 키와 몸무게를 재차 확인하더니 결국 결과지에 주의가 떴다. 잘 먹고 잘 자는 아기니 때가 되면 크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심란하다. 나는 원래 걱정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데도 평생 걱정 없이 살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아기에 관련된 일에는 좀처럼 쿨해지기가 어렵다.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이 작은 인간은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데, 내가 선택하거나 제공하는 것들이 과연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다. 주변 모두가 나를 보고 '아가야 엄마가 다 미안해'하는 타입의 부모는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지를 마주한 날엔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양육자로서 내가 몇 점 짜리인지 성적표를 받아 든 기분이다. 나는 맨 뒤에서 1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산책을 핑계 삼아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오는 봄에 밀려나다 만 서늘한 공기가 코에 닿도록 다니며 빵도 사고 커피도 마셨다. 경사로가 있어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별로 많지 않다. 늘 다니던 길인데도 직접 부딪히기 전엔 미처 몰랐다. 가게 입구 폭이라던가, 아기의자가 있는지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관찰에 소질이 없기도 했겠지만 분명 이 아기는 내 세상을 조금씩 넓혀주고 있다. 나는 아기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을 비웃어왔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아기가 있었으니 그런 말을 했을 텐데, 간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 어른일 기회조차 박탈하는 편협한 마음으로 잘도 어른이겠다 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어른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아기는 매일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게 나를 키우고 있다. 나는 자라고 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기는 이렇게나 나를 잘 키우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 명의 아기는 작은 우주라고 하던데 이 우주가 가진 힘과 잠재력을 나는 다 알아챌 수 있을까. 아기는 사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 저절로 크는 게 아닐까. 이런 하잘 것 없는 생각이나 하는 엄마인 나로도 괜찮을까. 아마 나는 남은 인생을 전부 이 아기를 걱정하느라 쓰게 될 것이다. 쑥쑥 자라서 나보다 더 커지고 더 이상 아기가 아니게 되어도 나에겐 여전히 아기일 테지. 50살이 넘은 자식에게도 길 건널 때 차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던 어느 부모들처럼. 그럼 내가 그랬듯 걱정 섞인 잔소리는 한 귀로 흘리고 아기는 겁 없이 길을 건너 제 갈 길을 가겠지. 어쩌면 내가 걱정 없이 살아온 시간도 누군가 내 걱정을 대신 다 해 준 덕분 인가 싶다. 이렇게 다들 걱정 많고 겁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드나 보다.


소소한 반성 끝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 작은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내 할 일을 하자.

앞선 걱정 대신 영양소를 골고루 넣은 이유식을 만들고, 같이 놀면서 딴생각하지 않기.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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