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코로나로 인해 단출했다.
25명이 훌쩍 넘는 친척들 간의 모임도 없이 큰집이라는 이유로 며느리 둘과 어머님을 제외하고는 다른 집안의 여자들은 이번 차례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도 더불어.
차례를 다 모시고 어머님은 자연스레 TV를 켜신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시고 어제 늦게까지 음식 준비를 하셔 지칠 대로 지쳐 계신 어머님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 야야, 쟈네 봐라. 어찌 저리 잘 부르노~"
하시며 치우기 시작한 차례상 앞에 서 계신다.
거기에 셋째 삼촌과 예전 방송국에 다니셨던 막내 삼촌의 합세로 트롯의 세계와 저 프로그램을 만든 PD 이야기로 들어간다.
사실 TV만 틀면 여기저기 나오는 요즘 트롯의 대세들에게 적잖이 질려 있던 나는 열심히 부모님 세대들의 흥분에 동참하긴 힘들었다.
셋째 삼촌의 말에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그 의미가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나 저 프로그램 아니었음 죽었어요! "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과장이 너무 심하다며 웃고 넘겼다. 외출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식들의 방문도 자제하는 요즘에 저 트롯가수들의 노래는 부모님들의 울적한 마음을 채워드리나 보다 정도에서 그쳤다.
아버님은 식사를 하시면서도 TV에 눈을 못 떼시면서 보셨다.
재방송인 걸 알아챈 나는
" 아버님, 저거는 본방 못 보셨나 봐요? "
" 아이다~ 몇 번을 봐서 쟤가 이번판에는 진다. 그리고 재방 때는 편집을 해서 쟤 우는 장면은 없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아버님의 설명에 어머님도 보태시고 누구는 무명이 길어 힘들었네, 누구는 자작곡을 만들어 실력이 좋네.. 하시며 마치 중대한 지식을 자식에게 가르치듯 자세히도 알려주셨다.
어디 가서 그들의 팬이라고 칭해도 될 만큼 그들의 정보를 어머님 아버님 덕(?)에 모두 다 알게 되었다.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그렇게 사이좋게 한 가수를 칭찬하며 한편을 먹으신 시부모님들은 어떤 한 가수의 인성에 대한 대립으로 여야 갈등보다도 더하고 격하게 언성을 높이셨다.
집안의 제사를 두거나, 집안 대소사에 따른 대립이 아니고 한 가수의 말투의 잘잘못을 따지며 대립각을 세우시는 진지함 때문에 커피를 타던 나의 손은 멈췄다.
차례 모시고, 트롯 신들도 모시고, 다음은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는 저녁을 한상 차려 놓으시고 이따 꼭 봐야 할 프로그램이 있다 하셨다.
그 눈빛에 나는 직감했다.
그리고 적중했다.
트롯가수들의 시상식으로 네 시간이나 하는 그 프로그램을 같이 보면서 아까 시어머님에게 들은 그들의 신상을 처음 듣듯이, 너무 재밌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듣고 있어야 했다.
그 사이 남편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꼼짝없이 밤 12시가 넘어까지 엄마와 같이 그들을 보면서 엄마도 보았다.
그들은 다른 가수가 노래 부를 때에도 매번 신나게 같이 노래를 불러주고 응원해 주는 모습에 엄마도 같이 좋아하시며 이 시간을 흘려보내신다. 자식 어느 누가 네 시간을 이렇게 즐겁게 해 드릴까?
코로나라 부모님 찾아뵙는 시간이 적어진다고 진심으로 마음 졸이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그들의 노래로 부모님들은 어릴 적 고향을 떠 올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한다.
그 공허한 시간을 그들의 노래와 음성으로 응원을 주고 웃음을 주는 그들 덕에 낮에 셋째 삼촌의 그 한마디가 진심이었다는 걸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들이 어디 나가서 자식 자랑을 저렇게 진심으로 마음껏 하실 수 있을까?
몇 시간씩 걱정거리 없이 그들의 노래에 푹 빠져서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해 드린 그들은 어쩌면 코로나를 지나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가장 잘해드리는 효자인 거 같다.
새삼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