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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Apr 16. 2022

부아가 치미는 지금... 이 또한 지나가겠지

고등학생의 자식이 있다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부아가 치미는 순간을 맞닥트려야 한다.

오늘은 아침 8시가 안 되어 노트북을 싸들고 드디어 나와 버렸다.

밤비만이 문 앞에서 나가는 엄마의 모습에 망부석이 되어 보고 있다.

'오늘은 내가 안 들어가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아침도 안 주고 점심에 주려 냉동실에서 꺼내 놓은 곰국도 걱정이고 소리 내며 문을 쾅 닫는 바람에 딸아이도 내 걱정하지는 않을까.. 밤비도 갑자기 나간 엄마를 문 앞에서 기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거실 CCTV를 열어봤다.

이 CCTV는 밤비 어릴 때 회사 나가 있는 동안 밤비 걱정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그 CCTV 화면 안에는 딸아이도, 망부석으로 바라보고 있던 밤비도 배를 하늘로 향해 누워서 그리 편히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나만 빠진 화면에 딸아이와 밤비는 편안하구나...

역시 나만의 걱정과 나만의 부아이구나...

나만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가 하는 대로 믿고 맡기면 우리 가족은 평안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딸아이도 숨 못 쉬고 힘들게 하루하루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쌓여가는 수행과 발표들, 각종 동아리 활동에 과외에... 아침에 못 일어나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의 모든 기운을 주고 싶다. 나의 모든 시간을 주고 싶다.

나름 딸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쏟아지는 잠에 여러 번 발목이 잡혔었다.

1학년 첫 시험기간에 잠 깨우는 게 버겁다 느껴져 나의 오기로 깨우지 않았다. 

알람은 1분마다 몇십 번이 울렸지만 깨우지 않았다.

날은 저물었고 순식간에 밤 12시가 되었다.

딸아이는 겨우 일어났다. 내 생각에는 아이가 울고 불고 왜 안 깨웠냐고 나에게 따질 듯 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딸아이의 인생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지켜 보고 있는 쿨한 엄마처럼 " 네 인생이잖니!"

라고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시계를 보던 딸아이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체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음날 휴일인 것처럼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그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은 앞으로도 기억될 순간이었다.

그날의 교훈이었을까? 나는 깨워달라고 부탁하면 힘들어도 깨워 주려고 노력했다.


이번 문이과 통합의 첫 수능에서 문과생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결과에 화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 뇌 전체 100프로 문과인 딸아이는 과학이 너무 힘들다며 외고로 진학했다.

외국어를 좋아하고 잘하는 딸아이는 학교를 너무나 사랑했다. 학교의 이름에 빛을 더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학교 생활에 만족해하며 다니는 중이다.

그러나 살인적인 수행들과 촘촘히 쌓여있는 내신 틈을 비집고 올라가기란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외고여도 요즘은 수능으로 많이 가는 추세인데, 수능에서도 문과 학과들이 이과생들로 채워진 올해의 입시 결과를 보니 문과생들의 답은 수시라고 다들 입 모아 이야기한다.

이런 현실과 맞물려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하루하루 나의 조급함은 나를 뾰족하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나가는 말도, 아이와 나누는 모든 대화 내용도 모두 중간고사로 향해 있다. 

모든 약속도 시험 후로 미루고, 아직까지 코로나 확진이 없는 우리 식구는 불안한 마음이지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걱정을 말하지 않는다. 마치 말 안 하고 지내면 영원히 모르게 비켜갈 것처럼.


엄마가 처음인 엄마들도 누군가의 딸이다.

분명 엄마들도 할머니의 잔소리가 싫었을 것이다. 내 인생이니 내버려 두라고 혼잣말로 할머니 뒤통수에 들릴 듯 말듯하게 이야기했을지 모른다.

할머니의 잔소리 덕에 지금의 내가 있는지 모른다. 할머니 잔소리 때문에 부족한 내가 되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엄마의 묵묵한 믿음 덕에 성공했다 하고, 어떤 이는 엄마의 포기하지 않는 길라잡이와 열정으로 성공했다 한다.

어떤 게 정답일까? 아이의 성향마다 다를 것이다.

다른 아이의 성향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금 고2인 내 딸의 성향만이 궁금할 뿐이다.

18년을 키워 왔고 그 아이의 엄마이기에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엄마의 자만일까?

여러 번의 변수가 있었다.앞으로는 더 큰 변수가 없을 거라 믿으며 매번 변수를 맞이할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해 겪고 견디어 왔다. 

내가 아이에게 힘이 되고 있는 걸까? 아이를 위한답시고 나를 위함은 아닐까?

오늘은 나에게 질문이 많아진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성향을 강요하고 설득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종교, 정치, 교육>

이 세 가지는 사람마다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고 아이의 성향도 달라 각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에 관한 책들도 읽다 보면 내 아이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더러 있다.

참고는 하되 내 딸에게 적용이 안 되는 경우도 많기에 한 해 한 해 나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딸과 대화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에 나는 늘 자부했다.

나름 좋은 엄마라고, 우리 모녀 사이는 이상적이라고, 인성적으로 잘 키워내고 있다고...

그런 나의 자부심이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를 둔 엄마에게 아낌없는 위로를 해 줬었다. 다 지나간다고..

그 시간만 지나면 모든 게 다 제자리로 온다고.

그 엄마들에게 고등학교 생활의 시간을 미리 알려줘서 더 절망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춘기의 시간처럼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오늘은 나를 위해 맛있는 점심을 먹어야겠다. 

벚꽃도 다 떨어졌지만 연둣빛의 하천길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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