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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Apr 16. 2022

우리 아이에게 동네 친구가 생겼다

" 우리 산책 갈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옷이 들어있는 서랍을 발로 긁고 난리가 났다.

하루에 한 시간씩 꼭 산책을 하려 한다. 그 한 시간은 밤비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다.

옷을 입히고 하네스를 채우고 물통과 간식, 배변 봉투를 가방에 넣는다.

나는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와 마스크, 편한 운동화로 준비를 마친다.

문 앞에서 밤비는 나가자고 껑충껑충 뛴다.

점퍼 지퍼를 올리는 그 시간을 못 기다리고 짖는다. 말이 안 통하는 밤비가 좋음을 표현하는 이 순간이 좋다.

엘리베이터 벽에 비치는 모습은 어린 선영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향하는 나의 예전 모습이 닮아 있다.

1층에 도착하면 땅에 내려놓으라고 허공에서 발버둥을 친다.

내려놓기가 무섭게 전력 질주하는 밤비 때문에 나는 끌려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목줄에 목이 아플까 같이 뛰는 나는 금방 지친다.

회양목을 좋아하는 밤비는 연둣빛 새싹의 냄새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향기로운 꽃들이 망울에서 활짝 만개했다. 그 향이 향긋해서인지, 호기심에서인지 무조건 입으로 가져간다.

가르친다고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어린 선영이에게 이야기하듯 설명한다.

" 밤비야. 이 꽃들도 너처럼 살아있는 생명이야. 예쁜 꽃을 네가 먹으면 다른 사람들은 못 보잖아. 그치? "

대답 대신 다시 한번 꽃을 뜯어먹는다. 입 속에서 꽃을 꺼내는 수고스러움을 반복하기를 여러 번.


옆에 실버 푸들 한 마리가 인사하러 와 있다.

꽃에 정신을 팔렸던 밤비는 옆 누군가의 존재에 깜짝 놀란다. 그러고는 잠시 코를 맞대어 인사를 건넨다.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인사하는 강아지들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냄새로 상대방의 정보를 알아 채린다는 사실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름은 쵸파,나이는 두 살이고 남자아이란다. 조용하고 사료를 잘 안 먹는다고 견주가 걱정한다.

놀이터에서 엄마들이 자식들에 대한 기본 정보를 읊는 것처럼 우리 둘은 각자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쏟아 낸다.

그 사이 두 마리의 강아지는 서로의 호기심이 끝났다. 각자 풀 냄새를 맡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목줄을 잡아당기고 있다. 

여느 동네 엄마들처럼 자연스레 동네 동물병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다.

밤비는 그간 계속해서 다녔던 동물병원이 이전했다. 그 소식은 잘 다니고 있는 딸아이의 학원이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럽고 서운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전만큼 좋은 동물병원을 찾는 게 가장 큰일이 되어 버었다.

각자 아는 정보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기뻤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내일 새롭게 생긴 병원에 같이 가보면 어떻겠냐고 누군가 제안한다. 나였나? 그 쵸파 엄마였나?


이렇게 밤비에게 동네 친구가 생겼다.

성향이 맞는 두 강아지가 엉덩이 실룩거리며 나란히 앞 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밤비의 친구가 되어 준 쵸파도 너무 반갑다.

땅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쵸파를 보고 전력질주로 달려가는 밤비를 보면 선영이 동네 친구 윤서가 생각난다.

학교 갈 때도 둘이 만나 자기 몸 크기만 한 가방을 지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떠 올라 새삼스러웠다.

8살의 어린아이들이 매일 만나는데 할 이야기가 뭐가 그리 많은지 재잘대는 모습과 두 마리의 강아지가 만날 때마다 서로의 냄새를 맡고 있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미치도록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딸아이 덕분에 목동에서 좋은 인연들과 추억 가득한 시절을 보냈다.

밤비 덕분에 강동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기 시작할 거 같다. 

하루에 한 시간. 밤비는 친구와 매일같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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