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출간 인쇄 날이. 컴퓨터의 폰트 글이 아닌 종이 위에 활자로 나오는 것이다. 그 날 이후에는 어떠한 수정도 어떠한 후회도 할 수 없다. 근데 벌써 후회가 된다. 좀 더 열심히 다듬어 볼 걸. 좀 더 고민해 볼 걸.
그래도 책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혀 나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설레는지 모른다.
1년 전만 해도 내가 책을 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글 쓸 줄도 몰랐으니.
1년 반 전에 방송국 기자단에 지원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방송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모이게 된 불특정 다수인의 집단. 그렇게 우리는 취재도 하고 기획기사도 같이 쓰고 정모도 하면서 친해지다가 그중 5명이 모여 책을 쓰게 된 것이다.
공저니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지, 나 혼자만이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도 부끄러운데 활자로 영원히 남는다는 게 혹시 나중에 후회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에 내 딸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 무슨 소리야! 나중에 내 딸한테 할머니가 쓴 책이라고 보여주면 얼마나 폼 나~ 멋져 멋져, 엄마! "
그러게.. 내 손녀가 내 글을 읽는다니, 그것 또한 부끄럽지만 멋진 일이네.
책의 출간은 생각보다 쉽지도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다. 물론 나는 공저여서 우리 중에 먼저 책을 출간한 분들이 앞장서 진행해 주어 그나마 나았지만,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나 같은 초자는 공저가 부담이 덜 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지만 기존에 책을 쓰셨던 분들은 일일이 경험 없는 나에게 설명해 주고 수정도 같이 봐주느라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책 방향을 잡고 각자 쓴 글을 취합하여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 하나씩 엮어 하나의 파일로 만든다. 출판사에게 보낼 기획서를 만든다. 그 기획서에는 우리 다섯 명이 공저하게 된 이유, 책의 방향, 출간 후 홍보활동 등의 내용을 적고 우리의 연락처를 적어 놓는다.
그다음은 한국에 있는 수많은 출판사 이메일 주소로나 각 홈페이지에 있는 출간 제안 카테고리에 우리의 책 기획서와 간략 본을 첨부해 보낸다. 우리는 5명이기에 그 수많은 출판사를 나누어 분담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긴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몇몇 군데에서 전화가 오던지, 이메일로 출간을 하고 싶다고 답 메일이 온다. 그때부터 우리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 출판사들이 그간 출간했던 책들의 분위기를 보고 홍보를 얼마나 잘하는 지도 본다. 우리는 그중 그간 출간했던 책들의 느낌이 좋고 우리와 방향성이 같은 출판사를 선택했다.
출판사계약서에 사인 한 날, 우리들은 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며 오늘을 영원히 기억할 거라 했다.
그다음은 또다시 기나긴 수정의 과정이 기다린다.
수정에 수정을 거치다 보면 내 글에 감흥이나 애착이 없다. 그냥 숙제인 것만 같다. 오타를 찾아내고 단어 하나에 집착하여 고쳤다 바꾸었다를 반복하면 나는 지쳐간다. 가장 큰 불편함은 글을 썼을 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바뀌어져 있을 때다. 글을 썼을 때는 남편이 희망에 가득 차 회사를 옮겼을 때고 지금은 그 회사를 나 온 때이기게 1년 전의 나의 글 속에서 그를 말리고 싶은 욕구마저 든다. 다른 작가들은 어떨까? 가령 책 속에서는 아름다운 신혼이야기를 쓴 책이 출간되고 몇 년 후 이혼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그 책을 다시 보거나 다른 사람이 그 책을 읽고 신혼의 따스함에 대해 질문한다면 어떨까? 아찔하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이 오늘을 써 내려가는 걸 보면 그것 또한 나 이기에 감수해야 할 듯하다.
서점에 가면 그 큰 공간이 다 책이다. 손에 닿지도,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다 책이다. 나는 이제야 그 책들의 여정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 힘든 여정 속에 탄생했을 그 책들이 대부분 나만의 책이 된다는 것도 안다. 우리의 책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그 여정 속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추억과 시간들에 감사한다.
이제 겉표지의 디자인 선택만이 남았다. 하나도 즐거운 일 없는 요즘, 책 출간이 나에게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기에 모든 걸 잊어버리고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