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생각하다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면 누구나 비극적이거나 무거운 이벤트로 떠올리기 쉽다. 그렇지만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필연적인 것이자 결국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철학과 사색의 대상이 되거나 삶을 더 잘 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걷고, 마시고, 즐기고, 나누고, 모으는 행위 모두 소중한 일상의 장면들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그 결론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여 필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장기 및 조직 기증을 신청하였다.
생명은 귀하지만 어찌 보면 물리적 시간의 모음에 불과하다. 그 삶이 시효를 다 했다면 하루라도 연장하여 소유하려는 기계적인 모습은 무의미하다. 고전 문학 속 많은 인물이 운명과 자연의 섭리를 수용하듯, 인위적인 생명 유지 장치에 기대어 병상에 결박되는 대신, 나다운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주체적 의지를 표현한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이것은 죽음을 향한 체념이 아니라, 남은 삶의 시간을 포함하여 순간순간을 치열하고 밀도 있게 존재하겠다는 삶을 향한 강렬한 긍정이다.
필자는 책을 모으고, 글을 작성하여 또 모은다. 이는 결국 기억되기 위함이다. 나의 지식과 사유가 텍스트가 되어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타인에게 가닿듯 내 삶을 담고 있던 영혼의 그릇 또한 쓰임을 다한 후에는 타인에게 건네질 수 있다. 장기 및 조직 기증에 대한 선언은 비워냄으로써 완성되는 수집이다. 책상 위에서 끊임없이 글자를 읽고 쓰며 다듬듯이 장기와 조직을 타인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 거치는 가장 아름다운 퇴고다. 나에게는 의미 없이 효력을 다한 육체의 파편들이, 간절한 누군가의 서가에서는 가장 절실한 새로운 문장으로 꽂히게 됨이 아름답다.
책을 구매할 때면 작가에게 인세가 돌아가지 않는 중고 서점이나, 인프라가 좋은 대형 서점보다 지역의 작은 독립 서점을 애용한다. 자본의 논리보다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장기 및 조직 기증 역시 생명이라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이타적인 방향으로 순환시키는 적극적인 연대의 행위라 할 수 있다. 문학과 철학을 탐구하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온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관성을 벗어나 진보하는 것으로, 나의 끝이 누군가의 절망을 끊어내는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이고 따뜻한 유산이다.
당신의 마지막 문장은 어떤 형태이기를 바라는가? 기증을 약속하고 의향서에 서명한 이후, 사뭇 삶의 장면들에서 더 선명하고 애틋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나의 죽음이 완벽한 소멸을 의미하는 마침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심장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죽음을 생각할 때 더욱 삶에 충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