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영토

내 몸에 대해

by 안진

각자의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몸에 대한 의미는 각기 달랐지만, 필자에게 몸은 매끈하게 관리되어야 할 빈 백지가 아니라, 일상의 분투와 시간의 흔적이 빼곡히 밑줄 쳐진 나만의 고유한 아카이브다. 일상을 살아갈 때면 몸을 외면하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나’는 몸이 있어야 존재하지만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운동을 하다 보면 참다못한 몸이 통증이라는 비명을 지를 때나, 거울 앞에 스쳐 지나갈 때만 몸의 존재를 인식한다. 몸은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자 시각적 대상인 육체기도 하지만 세상을 만지고 냄새 맡고 느끼며 감각하는 유일한 주체기도 하다. 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이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종이의 거친 질감을 어떻게 내 손이 감각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져야 할지 모른다.

몸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변한다고 표현하지만 실은 매 순간 늙어가는 것이다. 몸은 유한하기에 쓰다 보면 고장 나고 노후화된다. 이는 당연한 일로서 몸이란 언제나 빈 페이지가 아니라 주석이 가득한 텍스트로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새겨진 질감은 무시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몸을 티 없이 맑고 주름 없는, 이른바 새 책 같은 것을 이상으로 삼아 사람을 힘들게 한다. 티 없이 맑은 몸은 불가능한 환상에 불과하다. 삶은, 시간은 몸에 생채기를 내고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특정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 굳어진 근육, 집중할 때 짓는 표정이 만든 얼굴의 주름 등은 이상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지우거나 관리해야 할 결점은 아니다. 수백 권의 장서와 오래된 신문 뭉치가 저마다의 냄새와 색깔로 자신을 증명하듯 내 몸 역시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을 증명한다.

지식이나 지혜를 떠올리면 머릿속의 무언가를 생각하기 쉽지만, 머리에 아무리 많은 무엇이 들어있어도 그것이 손끝, 발끝까지 전해지지 않는다면 무용하다. 종종 우리는 정신, 이성, 철학들을 우위에 두고 몸을, 그것을 담는 비루한 그릇이나 도구쯤으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아서 대부분 몸뚱어리에 지배받는다. 고요한 독립 서점의 문을 열며 만들어낸 공기, 좋은 문장을 경험하며 뛰는 심장 등 깊은 깨달음과 울림은 결코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과 교감하는 몸으로 완성된다. 내 몸은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최전선의 안테나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젊고, 건강하고, 날씬하고, 지치지 않는 몸은 허상이다. 몸은 많이 쓰면 닳기 마련이고 피로가 쌓이며 취약해진다. 그러나 이 한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일은 분명 서글픈 일이나, 이런 취약함이 연대와 이해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내 몸의 뻐근함, 통제되지 않는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불완전함에 대한 인정은 곧 아프고 나이 들고 느린 타인의 몸을 시각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삶의 무게를 깊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자신과 타인의 몸에 대한 엄격한 감독관의 시선을 거두자. 몸을 목표치에 도달해야 하는 과제로 삼는 대신 먼저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자. 몸은 평생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동반자다. 어디에 있던 일어나 발을 땅에 딛는 감각에 집중해 보면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가장 단순하고 거대한 감각적 환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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