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함정과 현실

재능에 대하여

by 안진

인간의 마음속에는 여러 열망이 피어오른다. 그것을 꿈이라 말하기도 하고 낭만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 불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종종 재능이라는 부싯돌을 찾는다. 특히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인 것처럼 재능을 묻는다. 재능이 있느냐는 물음은 때로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조차 못 하게 막는 엄격한 문지기가 되기도 한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고유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재능이라는 단어는 종종 개인의 한계를 미리 설정하는 함정으로 작동한다. 진정한 재능의 실현은 타고난 천재성보다 나이, 환경, 시간이라는 현실적인 변수와 어떻게 타협하고 조율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재능을 떠올리면 모차르트가 5살에 작곡을 하는 등의 극소수 마법을 떠올린다. 이런 재능은 정말 흔치 않기에 보편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토양과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다정함, 수백 권의 책을 곁에 두고 문장의 이면을 읽어내는 통찰력, 목적지 없이 걷고 산책하며 끊임없이 사유하는 태도 모두 훌륭하고 보편적인 재능이다. 재능이라는 단어를 현실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 괴테나 헤세의 위대함도 단지 글쓰기 유전자가 아니라,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감수성에서 비롯되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 안의 씨앗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 여정 자체가 지니는 인간적인 낭만과 존엄성을 긍정해야 한다.

또한 재능을 오로지 타고나는 것으로만 한정 지을 때,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훌륭한 핑곗거리가 된다. “나는 재능이 없으니까 이런 거야.”라는 말은 노력을 무력화하고 도전을 체념하게 만드는 가장 달콤하고 위험한 함정이다. 현대 사회는 즉각적으로 자본으로 환산될 만한 능력을 유용한 재능으로 칭송한다. 이 능력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한다. 하여 오랜 시간 고요히 사유해야 하는 철학적 깊이나, 느리게 쓰이는 글쓰기 같은 잠재력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앞세워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폭력성을 나타낸다. 누군가의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의 문제보다 콘크리트 바닥이라는 환경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불평등한 조건과 부족한 지원의 책임을 가리고, 오직 개인의 재능 부족과 노력 부족으로 모든 실패를 전가한다.

필멸자인 인간에게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가령 신체적 순발력이 필요한 체조 선수의 재능은 10대에 만개해야 하지만, 인간과 삶을 이해해야 하는 문학과 철학, 글쓰기의 재능은 나이와 경험의 지층이 쌓일수록 오히려 깊어지기도 한다. 나이는 한계점이 아니라, 재능의 성격을 바꾸는 맥락이다. 또한 재능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틈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상황만 이어진다면 아무리 뛰어난 잠재력도 유예될 수밖에 없다. 눈앞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재능의 발현에 있어 중요한 현실적 조건이다. 이 외에도 우연성과 타이밍이라는, 소위 운이 필요하다. 나의 가치관이 맞는 공간이나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나 시대의 흐름과 부합하는 재능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실현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이다.

여러 조건과 생각을 고려하더라도 누군가 현실에서 낭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응원은 못 할망정 재를 뿌릴 일은 아니다. 재능은 금고 안에 들어있는 고정된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요건과 상호작용을 하며 자신만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재능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여야 한다. 그렇다고 현실의 변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적 변수를 인정하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나의 속도에 맞게 형태를 조율하는 지혜다. 특정 시기까지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결국 진보적인 사회란, 소수의 천재를 발굴하는 사회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나이와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보편적 재능을 의심하지 않고 꾸준히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안전한 토양과 시간을 허락하는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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