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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ka Sep 05. 2024

<강맛그.11 꼬치어묵과 물떡>

ㄱㅁㅈ의 맛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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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어묵과 물떡>


 우리 부모님은 부산이 고향이다. 어릴 땐, 명절이나 방학이 되면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부산에 가고는 했다. 친가에서 잠을 자고 외가는 날을 잡아가서 놀고 오고는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사메뉴는 친할아버지께서 정하시고는 했다. 우리 가족이 부산에 가면 광안리해수욕장에 있던 회센터(부산에 가본 지 오래되어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서 회를 떠서 위층의 식당에서 먹거나, 냉면 혹은 밀면은 한 번씩은 꼭 먹는 메뉴였다. 회는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비싼 음식이었기 때문에, 부산에 갈 때는 회는 언제 먹나 (종종 회를 집에 떠와서 먹기도 했지만) 늘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는 법. 친할아버지께서는 나이가 드시며 밖에서 같이 돌아다니시기보다, 티브이를 켜놓고 누워서 보시며 쉬시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사촌동생들과 언니, 그리고 내가 슬슬 커가며, 우리들만의 시간이 필요해질 쯔음, 우리는 어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보다, 종종 남포동시내나 국제시장에 구경 가는 일을 즐겼다. 


 부산에 오기 전에 열심히 집안일하고 모은 용돈, 그냥 받은 용돈, 명절에 열심히 친척들한테 절을 하고 얼굴도장을 부지런히 찍으며 받은 용돈, 안 주셔도 돼요 돼요 하며 수줍은 듯 모은 용돈 등을 박박 긁어모아 노다지 구제샵을 캐내려 하는 우리들이었다.


 국제시장에 숨은 우리가 찾은 구제샵들은 평소 우리가 다니던 곳보다 (버스나 지하철을 한참 타고 나가야 살 수 있는 명동 밀리오레나 두타, 반포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보다도) 더 매력적인 물건들이 숨어있는 곳이었다. 워낙 구불구불 깊은 곳에도 뜬금없이 노다지가 열리기 때문에, 그런 곳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낙이었으며, 용돈을 다 쓸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한이었다. 


 아이쇼핑, 리얼쇼핑 다 하고 나면 어른들께 우리는 먹고 집에 들어갈게요, 하고 그곳에 갔기 때문에 배를 채우고 가야 했다. 난 음식을 특별히 가리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보통은 그곳을 꿰고 있는 사촌동생이 메뉴를 정하곤 했다. “언니야, 맛난 거 사 묵자.”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국제시장을 나는 헤매는 기분으로, 사촌동생은 익숙함으로 도착한 어떤 작은 골목의 사거리 느낌이 나는 곳에 떡볶이 집이 있었다. 어묵국물이 부글거리는 어묵과 곤약 물떡이 그득그득 들어있는 그곳은 분식집. 분식집 메뉴라고 해봐야 그 세 가지와 김밥, 순대가 다다. 요즘같이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가짓수다. 난 단순한 메뉴가 좋다. 어쩐지 자신 있어 보이니까. 떡볶이도 가래떡으로 되어있어, 하나라서 기분상 적은듯하지만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다. 그 당시에 동네에서는 먹을 수 없던 메뉴. 


 어묵과 함께 들어있는 물떡을 처음 봤을 때는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허옇고 뭔가 표면이 느물거리는 느낌이 들어 (랩에 쌓인 매끈한 가래떡만 보다가) 보기엔 거부감이 좀 들었는데, 입에 넣으면 겉면에 짭쪼롬히 배어 있는 국물과 점점이 붙어있는 살짝 훅하는 후추의 맛이 느껴지고, 긴 물떡의 일부를 씹어 자르면 속 안의 맹맹하고 단순고소한 떡이 느껴지고, 국물을 같이 조금 한 입 삼키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고짭(고소하고 짭짤)의 맛. 


 어묵은 말이 필요하겠는가, 긴 막대기에 꽂아져 있는 구불구불 어묵을 볼 때면 오늘은 몇 개를 먹어야 만족스럽게 마무리가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이 먹으면 더부룩하고, 적당히 먹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가끔은 한 꼬치의 차이로 ‘아, 이건 먹으면 안 되었었는데.’ 하며 후회를 불러오는 지금과는 크기도 다른 크나크던 어묵꼬치. 약간은 불어있는 어묵이 국물이 스며들 대로 스며들어 맛있다. 어묵국물에 둥둥 떠있는 꽃게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자주 먹지 못하던) 꽃게를 먹는 느낌이 들어 대리만족도 느끼며 한 입 베어문다.


 결혼하고, 남편이랑만 있을 때는 잘 먹을 일이 없던 꼬치어묵과 물떡. 아이들이 커가면서, 종종 장을 함께 보다가 급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할 때는 식사를 먹이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마트에 있는 어묵코너에 가곤 했다. 나의 사심도 조금 채우고. 제주도로 이사를 오고 난 뒤에 마트를 처음 들렀는데, 경기도에 있는 마트에서는 보지 못했던 물떡과 어묵이 서귀포의 마트 어묵코너에서 팔고 있었다. 아이들을 사주는 척, 엄마가 뜨거운지 먹어볼게 호-호- 불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그 맛이다. 이상하게 집에서는 안나는 그 맛. 내가 안 한 남이 해준 물떡과 어묵의 맛. 그래서 비싼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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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카 일러스트 : 

www.instagram.com/anka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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