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ㅁㅈ의 맛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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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작 오이고추>
내가 어릴 때 접할 수 있던 고추는 대부분이 풋고추 거나 고춧가루를 만드는 빨간 고추였다. 나는 매운 것을 그렇게 잘 먹던 편이 아니었어서, 고추든 고춧가루든 친한 편은 아니었다. (고등학생쯤부터나 뭐 김치찌개 맛있게 먹었을까. 물론 떡볶이는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마라탕이나 불닭볶음면 이런 걸 접하고 인공적인 느낌의 아주 매운맛까지 섭렵하지만, 어쨌든 나의 어린 시절의 매운맛은 횟집의 초장과 와사비, 풋고추, 김치 정도였던 것 같다.
꼭 어른들이 고깃집에 가면 한 번씩 아이들에게 하지 않나. “이거 안 매워 먹어봐, 맛있다니까. 이거 먹으면 어른이다, 어른.” 어른이 되려다가 된통 당하고 눈물 한번 쏟고는 어린이에 머물기를 택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런 나에게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린 부산의 사촌여동생이 있다. 친가의. 그 아이는 횟집이나 고깃집엘 가면 유치원생이었나... 저학년일 때도, 풋고추를 철근처럼 뜯어먹는 동생이었다. 그때는 그 동생과 놀 때도 주로 내가 지거나, 물건을 뺏기기도 했어서, 조금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심지어 그 매운 풋고추를 고추장인가 쌈장을 찍어먹기까지 하니, 얼마나 더 강하게 느껴졌었는지. 지금은 오이고추 같은 사람이 되었지만 말이다.
오이고추. 이름에서부터 느껴지지 않는가. 아삭함. 시원함. 반짝임. 매끈함. 큰 크기. 수분감. 이름에서부터 벽이 낮아지지 않는가, 고추 입문자에 대한. 오이고추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결혼하고서야 오이고추의 존재에 대해 알았으니 그때쯤부터인지라고 대충 생각해보려 하다가 찾아보니, 내가 대학생일쯔음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풋고추를 먹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롭게 등장한 저 고마운 존재는 그래도 다른 고추만큼 여전히 랜덤 맵기가 등장하긴 하지만 풋고추만 하랴.
물론 (어른인) 난 매운 청양고추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국에 다져 넣거나 반찬으로 조금 집어먹거나 하는 정도이다. 생으로 고기에 싸 먹기에 내 위장은 이제 너무 연약해졌다. 그렇다고 덜 매운 풋고추를 먹기에는 나를 랜덤 하게 괴롭히는 매운맛이 싫다. 예고 없이 몰아치는 매움은 괴롭다.
오이고추를 마트에 가면 두 봉지씩은 챙긴다. 물론 채소물가가 너무 올랐을 때는 하루 한 봉지 같은 알뜰코너에 가서 한 봉지 겨우 사서 시무룩하게 돌아오지만 말이다. 오이고추를 가볍게 씻어 다른 특별한 반찬을 하지 않고, 그냥 쌈장에 찍어 먹는다. 매끼에 서너 개씩 와작와작 씹어먹으면 다른 야채를 못 먹더라도 건강해지는 (마음속) 느낌이 든다. 어지간한 반찬이나 식사류 사이에 함께 먹으면 괜한 느끼함이나 더부룩함을 상쾌한 아그작이 줄여준다. 그 맛으로 먹는다. 혹은 그냥 맛있어서든. 그냥 좋아서든. 단어의 어감도 좋고.
너무 좋은 나머지, 향토오일장에서 모종을 사서 마당에 심어버렸다. 기르기에 실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자라서 날 당황시킨 오이고추. 오늘도 마당의 고추는 아그작소리를 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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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카 일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