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세 아이들
사회 초년생, 이제 막 돈을 버는 재미로 음주가무만 열심히 즐기던 나. 이젠 좀 정신 차리고 살으란 의미로 하늘이 내려주신 건지.. 세 아이란 선물이 도착했다. 세 아이의 아빠는 나와 동갑인 사회 초년생. 그는 군대에 다녀온 만큼 나보다 월급의 재미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나의 소개팅 예정 남이 썸녀가 생기는 바람에 대타로 나온 그. 소개팅 당일 있는 힘껏 꾸미고 잠실역 사거리를 거닐며 그를 만난 첫날. 어쩐지 나보다 허벅지가 얇아 보이는 그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반문하면서도 그에게 묘하게 끌렸다. 어쩌면 그가 타고 있던 K5 신형(그 차엔 내 지분이 반쯤은 포함됐지만..?)에 끌렸는지도... 그는 그날 소개팅을 끝내며 새 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차로 나를 태워주지 말았어야 했다.
27살 어리고 어린 나이 우리는 서로 짧고 굵게 플러팅을 하다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버렸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파악이 가능하리라 본다. 우리는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앞으로 다가올 암흑과도 같은 결혼생활은 상상조차 못하면서 그저 행복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스타트는 순탄했다. 나는 아직 그의 성격을 100% 파악하지 못했고, 그 역시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을 몰랐으리라.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양가 부모님과 정식으로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아이가 한 명일 거라 착각하면서 서로 잘 살아보겠노라 굳게 다짐하며 내 생애 보일 수 있는 열정과 착함을 어필하며 인사를 드렸다. 그날 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세명만 낳아라'라고.. 옛 속담 중에 맞지 않는 속담 하나 없다고, 그 말은 곧 씨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고 두 번째 산부인과 검진에서 아기집 하나에 나란히 자리 잡은 세 아이의 심장소리를 마주했다.
그는 놀라움이 뒤섞인 한숨을 내뱉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애 키우는 게 어떤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줬다. 일란성은 2배로 분열하기 때문에 원래는 4명이었을 거라는 말을, 하나는 자연적으로 도태가 됐고 아기집 하나에 나란히 세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우리는 얼떨떨하게 세 아이의 부모임을 받아들였고, 이런 경우엔 선택적 유산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으며 산부인과를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 준비라는 것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웠고, 4월에 결혼해 8월에 아이들을 낳았다.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고 싶었던 나의 꿈은 고위험 산모로 불러오던 배 덕분에 포기해야만 했고 누구보다 짧은 신혼생활을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우리의 결혼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리라. 그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고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친절함을 베풀었다. 애가 없으니 돈도 잘 모였다. 역시 결혼을 하면 돈이 모인다는 이야길 실감하면서 불어나는 잔고에 이 정도면 아이들 키우기 괜찮을 거란 착각 속에서 임신과 신혼생활을 만끽했다.
그땐 정말로 몰랐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떤 일인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상상한들 이해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키울 거야'라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어떻게든 되겠지요'란 대답만 되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8월까지 둘 사이에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신혼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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