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시작된 기적, 그리고 7주의 시간

마흔에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리고 다시 나로 돌아오기까지의 기록

by 안미쌤

41세.

만 39세에 시작한 첫 시험관.


우리 아이 갖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건강하지 않은 몸이지만, 아직은 부모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나이였다.


결혼을 해서는 먹고살기 바빠서.

이후 여러 시련을 핑계 삼아.

나롱이를 보살필 때는 나롱이를 핑계로.

그렇게 아직 우리는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40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두 번의 근종개복술.

내 자궁은 안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시간이 없었다.




25년 3월.

두 번째 근종 수술 후, 5개월 넘게 생리를 하지 않았다.

수술 3개월 후 진료를 갔을 때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은 난소호르몬 수치가 낮다고 하셨고, 회복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이후, 가을부터는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해야 하니, 8월 이후 난임병원에 가볼 것을 추천하셨고, 그때까지 생리를 하지 않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시기에 맞춰 병원 방문을 하라고 하셨다.


이후, 8월에 난임병원을 방문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향한 난임병원.


첫 초음파 진료 후, 난포가 자라고 있지 않다고 했고, 배란유도제를 처방받았다.


근종 수술 전, 3개월 동안 하혈을 했을 때는 제발 피가 멈추길 기도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술 후 5개월은 제발 피가 나길 기도했다.


이후, 몇 주 지나지 않아 첫 생리가 터졌다.


생리가 터지니, 이제 임신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후 매 달 배란유도제 처방을 받으며, 12월까지는 자연임신 시도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란일에 딱딱 맞춰 시도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둘 다 밤 11시 넘는 퇴근에 지쳐있는 상태에서 시간을 맞추기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은 흘렀고, 12월 진료 날.


1월부터는 시험관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고, 의사 선생님도 동의하셨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도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게 우리의 첫 시험관은 시작되었다.




1월 2일부터 배주사를 맞고, 질정을 넣고, 1월 10일에 난자채취를 하였다.


이후, 3일 배양한 수정란 2개를 1월 13일에 이식하였고, 1월 23일에 hcg 호르몬수치로 임신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던 20일이 흐르고, 23일 아침 피검사를 받고 귀가했고, 오전 11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미*님 되시죠? 피검사 결과 나와 연락드렸습니다."

"네.."

"호르몬수치 95.1로 임신이세요!"

"네..? 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모르고 계셨나 봐요~ 축하드려요."


그 전화를 끊고, 얼마나 울었던지.. 정말 기적 같았다.

나에게 우리 아이가 찾아오다니..


그 전화 한 통이 나를 엄마로 만들었고, 또 엄마였던 시간을 시작하게 했다.


그리고, 7주 동안 나에게 엄마의 기쁨을 알려준 우리 첫 아이는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의 기쁨이..

얼마나 짧은 시간의 선물인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시험관아기

#난임

#난임일기

#40대임신

#시험관임신

#유산

#임신기록

#시험관일기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