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롱이의 보호자입니다.
나롱이와 소소하게 일상을 함께 하고 있지만, 사실 나롱이는 "심장병 D단계" 환자다.
일주일마다 '흉수'를 제거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신세였다.
나롱이는 심장이 비대해지기도 했지만, 판막이 변성되어 잘 닫히지 않아 심장이 수축할 때 혈액이 역류하여 흉수(또는 복수)가 차는 거라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흉수가 차 있을 때는 폐 주변이 뿌옇게 보였고, 흉수를 제거하면 하얀 거미줄 같은 형체들이 사라져 장기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이 흉수가 나롱이의 호흡을 방해하면 위급해지는 것이었다.
바다를 다녀온 뒤, 2023년 11월 17일.
나롱이의 진료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롱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출근 전,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맡기고 평소와 다름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료를 마치신 선생님은 우리를 상담실로 부르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현재 나롱이 흉수 양상이 '유미흉'으로 바뀌었습니다. 잦은 흉수 천자로 기흉도 살짝 보이고요. 아무래도 주사기로 찌르다 보니, 천자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 같습니다.
여기 보시면 이전에 흉수는 분홍빛 투명한 액이었다면, 유미흉은 하얀 우윳빛을 띄고 있습니다. 지방이 같이 빠져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아무래도 몸속에 오래 머무르면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주 흉수천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보호자님께서도 자주 오시는 게 시간과 비용면에서 힘드실 수 있을 것 같아, [흉관포트삽입술]을 진행해서 보호자님이 집에서 나롱이의 흉수천자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흉관포트를 삽입하면, 우선 병원에 매주 오지 않아도 되고, 특이사항이 없다면, 2주에서 한 달까지도 진료 텀을 둘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유미흉이 진행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나롱이의 상태를 보고 좀 더 빠르게 흉수를 몸에서 제거할 수 있어 나롱이도 고통이 덜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이제 좀 살만한 줄 알았는데..'
'나롱이는 아니었던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고, 내 잡념을 흐트러트리기라도 하려는 듯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건 제 소견이니 보호자님께서 충분히 고민을 하신 후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것만도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한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있다니..
"나롱이는 현재 심장병으로 수액을 맡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15살의 노견이기 때문에 마취 위험성이 굉장히 큽니다. 간단한 수술이긴 하지만, 마취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사실 수술을 권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나롱이가 마취를 버틸 수 있는 상황인지 검사도 필요하고, 검사 결과를 토대로 외과 선생님들과도 상의해서 최대한 마취를 짧게 하는 방향으로 수술을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마저도 사실 위험한 상황이라 보호자님께서 충분히 고민을 해보시고 결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듣고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어떤 게 나롱이를 위하는 걸까?'
'나롱이는 어떻게 하길 원할까?'
'나롱이를 떠나보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나의 욕심으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리는 건 아닐까?'
나롱이가 되어 생각을 해보려 노력했다.
'나롱아, 누나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생각을 이어가던 중, 단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고 나는 선생님께 그 질문을 던졌다.
"이 수술이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수술인 건가요?"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거라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겠다는 듯 차분히 설명을 이어가셨다.
"이 수술을 권하는 이유는, 나롱이가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것보다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편하게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고, 나롱이가 호흡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남은 시간 동안 '삶의 질'을 올려주기 위함이지, 생명을 연장하는 수술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질문을 이어갔다.
"음.. 이런 말씀드리기 뭐 하지만, 아무래도 나롱이가 몇 달째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수술을 하게 되면 집에서 흉수천자를 진행할 수 있으니, 그만큼의 비용절감이 되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에 앞서 '수술비용'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요.. 대략 비용을 알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충분히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고,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고민을 좀 더 해보고 답변을 드리기로 했다.
나롱이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긴 했지만, 현실적인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롱이는 '생사'가 달린 일인데, '돈 걱정'이 수술 여부에 단 2%라도 영향을 주는 현실이 야속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일주일 후.
남편과 나는 수술에 동의했다.
그 사이에 여러 대화가 오갔고, 우리의 생각은 하나로 좁혀졌다.
'그래, 나롱이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숨 쉬는데 불편함 없이 편하게 살다 가게 해주자.'
억지로 생명 연장을 하는 게 아니라면, 누나와 함께 하는 지금을 행복해하는 나롱이를 놓아줄 수는 없었다.
'돈이야 또 벌면 되지'
그리고, 선생님에게 그동안 고려대상이었던 [식도관 삽입수술]도 같이 하는 게 어떤지 여쭤보았다.
나롱이는 현재 주사기로 강급을 진행하고 있지만, 주사기에 대한 강한 거부로 인해 하루에 50ml도 먹지 못했고, 간식조차 입에 대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13kg의 건강했던 나롱이는 6kg 후반대까지 살이 빠진 상태였다.
마취의 위험성 때문에 굳이 선택하지 않았던 식도관 삽입수술을 마취한 김에 같이 하는 게 어떤지 여쭤본 것이다.
선생님은 "마취시간이 조금 늘어나긴 하지만, 계속 살이 빠지는 것도 나롱이에게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으니, 같이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마취시간이 괜찮을지 이 부분도 외과선생님들과 상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다.
그래, 이왕 수술하는 김에 '앞으로 너의 수고도, 나의 수고도 좀 덜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롱이는 수술 며칠 전 입원을 진행했고, 2023년 11월 28일 오전에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2023년 11월 28일.
조금은 느리게 오길 바랐던 그날이 왔다.
아침 11시에 수술이었기에 부지런히 병원으로 향했고, 선생님은 '수술 전 나롱이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는 소식과 함께 '수술 전까지 나롱이와 함께 할 시간'을 허락해 주셨다.
나롱이는 몇 시간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누나와 형아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한 얼굴이었다.
'이제야 데리러 왔냐'는 표정으로 하염없이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나롱이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나롱아~ 잘 버틸 수 있지? 우리 나롱이 잠깐 자고 일어나는 거야. 꼭 다시 일어날 수 있지?~" 라며 나롱이에게 세뇌 아닌 세뇌를 시키며 나의 말에 동의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선생님은 우리에 대한 배려로 나롱이의 수술 준비를 최대한 면회실에서 해주셨고, 수술에 들어가기 1분 전까지 우리와 함께 있게 해 주셨다.
그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롱이가 정말 못 깨어날 수도 있나 보다.'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함께 하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수술방을 유리창으로 볼 수 있는 구조여서, 나롱이가 수술대에 눕기까지의 과정을 바라보았다.
여러 선생님들 사이에 둘러싸인 나롱이는 수술부위의 털을 사정없이 밀어댐에도 '의젓하게' 앉아있었다.
흡사 군대 들어가기 전 비장한 표정의 청년처럼.
이후, 마취가 시작되었고, 잠이든 것을 확인한 선생님들은 나롱이를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눕혔고, 1분 1초가 위험할 수 있기에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남편은 조바심에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우리가 너무 지켜보면 부담스러우실 거야." 라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나롱이 수술이 끝나면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현실이었기에, 우리는 뭐라도 간단히 먹기로 하고 차에 올랐다.
근처 버거킹에 가서 와퍼를 시켜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는데,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나롱이는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고 있는데, 나는 또 이게 들어가네?"
나는 남편에게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말을 꺼냈다.
남편은 내가 혹여나 죄책감을 가질까 "우리가 먹고 힘내야 나롱이도 보살피지~"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먹던 햄버거를 마저 욱여넣었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병원이었다.
'왜? 왜 병원에서 벌써 전화가 오지? 설마.. 설마??'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