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포기할 수 없기에.
얼른 받으라며 온몸을 떨어대는 전화에 햄버거를 씹다 말고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설마.. 아니겠지..?'라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여.. 여보세요?????"
"아 보호자님~ 여기 *** 병원입니다. 전화가 와서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나롱이 수술 잘 끝났고, 다행히 마취에서도 잘 깨어나 회복 중에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목소리로 전해졌는지, 선생님은 차분하면서도 빠르게 나롱이의 소식을 전했다.
"아, 네~ (휴우...) 금방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우리 부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나롱이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로 이동한 나롱이는 마취에서 깨긴 했지만 눈도 뜨지 못한 채 축 처진 몸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쥐 파먹은 것처럼 사정없이 빡빡 밀려있는 오른쪽 갈비뼈와 목 주변에는 빨간 소독약이 온몸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고, 흉관포트가 삽입된 부분은 툭 튀어나와 까만 실로 꿰매어져있어 보기 흉했으며, 흉관포트부터 삐쩍 마른 갈비뼈 옆으로 흉수천자를 하기 위한 호스가 피부 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목에는 식도관에 삽입한 튜브가 툭 튀어나와 있었고,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차마 수술부위 사진은 올리지 못하겠다.)
나롱이가 숨을 쉴 때마다 몸 안에 삽입된 호스는 내 눈에 더 도드라지게 보였고, 목에 삽입된 튜브는 달랑달랑 불편해 보였다.
순간, '내가 지금 나롱이한테 뭘 한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자다 깨니 본인 몸에 이상한 게 삽입되어 있고, 수술로 인한 몸에 상처 때문에 이유도 모를 통증이 있을 나롱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참 못할 짓을 한 기분이었다.
그런 나롱이를 보며 나는 "나롱아.. 우리 나롱이 고생했어.. 나롱이 잘 회복할 수 있지?~ 누나 내일 또 올게! 나롱이 잘 쉬고 있어~~"라며 인사를 했지만, '인사를 가장한 세뇌'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롱이는 나한테 수술시켜 달라고 한 적 없는데..
괜찮다며 얼른 회복하라고 세뇌를 하는 듯한 내 인사에 나조차도 정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롱이가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우린 나롱이에게 세뇌 아닌 세뇌를 하고 출근을 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나롱이를 보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시며, 수술은 잘 됐고, 흉관포트 통해서 흉수 천자가 잘 되는 것도 확인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식도관도 잘 삽입되어 나롱이가 밥을 잘 먹었다는 것도.
(물론 나롱이가 입으로 먹는 건 아니기에 먹었다는 표현이 맞는 건가 싶긴 하다.)
수술에 대한 선택은 보호자인 나의 몫이었지만,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해 주신 선생님이 있었기에 다 가능한 일들이었다.
처음 나롱이가 무지개다리 문턱까지 다녀온 날, 약물에 대한 반응이 보인다며 '안락사'를 고려하는 보호자를 설득해 '조금 더 지켜보자'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선택도 없었을 테니까.
나롱이가 마취를 잘 버텨준 덕분에 우리가 바라던 데로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 나의 역할이 중요했다.
수술부위는 하루에 2번 소독을 해야 했고, 그 과정도 빨간 약과 알코올 솜, 연분홍 소독약 순서가 있었으며, 식도관도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어 3일에 한 번꼴로 순서에 맞게 소독을 해줘야 했다.
그리고 흉수천자를 하는 방법과 식도관을 통해 사료를 먹이는 방법 등 단순한 듯하면서도 매우 복잡한 일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흉수천자는 바늘을 찌르는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기에 나비침을 꽂을 때 튜브를 닫았다가 열었다가 하는 과정이 조심스러웠고, 꽂기 전 소독과 꽂은 후 소독 등 여러 번 해야 하는 소독 순서가 매우 헷갈렸다.)
그래도 이제 밥과 약을 식도관을 통해 정량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과정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하나하나 눈에 담고, 머릿속에 입력하려 노력했다.
퇴원 후, 집에 와서 식도관을 통해 '완밥'을 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매일 입으로 요령껏 뱉어냈기에 먹는 거 반, 흘리는 거 반 엉망진창이었는데, 드디어 주사기에 준비된 모든 밥이 모두 나롱이의 뱃속으로 들어간 그날이기에..
나롱이는 자기가 왜 이런 수술을 한지 안다는 듯이, 매일 누나 다리에 얌전히 앉아 정량의 밥을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집에서 시도한 '첫 흉수천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잘 해냈다.
비록, 수술 부위 부종을 방지하기 위해 나롱이는 '과일 포장'이 되었지만, 조금씩 적응하며 몸무게도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에 '수술하길 잘했다' 생각하며 '이제 점점 병원에 가는 시간도 줄일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갔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로부터 정확히 수술 11일 후.
나롱이는 다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