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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Aug 12. 2024

선택 그후, 11일의 행복

그래도 포기할 수 없기에.

얼른 받으라며 온몸을 떨어대는 전화에 햄버거를 씹다 말고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설마.. 아니겠지..?'라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여.. 여보세요?????"


"아 보호자님~ 여기 *** 병원입니다. 전화가 와서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나롱이 수술 잘 끝났고, 다행히 마취에서도 잘 깨어나 회복 중에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목소리로 전해졌는지, 선생님은 차분하면서도 빠르게 나롱이의 소식을 전했다.


"아, 네~ (휴우...) 금방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우리 부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나롱이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로 이동한 나롱이는 마취에서 깨긴 했지만 눈도 뜨지 못한 채 축 처진 몸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수술 후 나롱이 모습


쥐 파먹은 것처럼 사정없이 빡빡 밀려있는 오른쪽 갈비뼈와 목 주변에는 빨간 소독약이 온몸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고, 흉관포트가 삽입된 부분은 툭 튀어나와 까만 실로 꿰매어져있어 보기 흉했으며, 흉관포트부터 삐쩍 마른 갈비뼈 옆으로 흉수천자를 하기 위한 호스가 피부 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목에는 식도관에 삽입한 튜브가 툭 튀어나와 있었고,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차마 수술부위 사진은 올리지 못하겠다.)


나롱이가 숨을 쉴 때마다 몸 안에 삽입된 호스는 내 눈에 더 도드라지게 보였고, 목에 삽입된 튜브는 달랑달랑 불편해 보였다.


순간, '내가 지금 나롱이한테 뭘 한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자다 깨니 본인 몸에 이상한 게 삽입되어 있고, 수술로 인한 몸에 상처 때문에 이유도 모를 통증이 있을 나롱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참 못할 짓을 한 기분이었다.


그런 나롱이를 보며 나는 "나롱아.. 우리 나롱이 고생했어.. 나롱이 회복할 있지?~ 누나 내일 올게! 나롱이 쉬고 있어~~"라며 인사를 했지만, '인사를 가장한 세뇌'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롱이는 나한테 수술시켜 달라고 한 적 없는데.. 

괜찮다며 얼른 회복하라고 세뇌를 하는 듯한 내 인사에 나조차도 정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롱이가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우린 나롱이에게 세뇌 아닌 세뇌를 하고 출근을 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나롱이를 보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시며, 수술은 잘 됐고, 흉관포트 통해서 흉수 천자가 잘 되는 것도 확인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식도관도 잘 삽입되어 나롱이가 밥을 잘 먹었다는 것도. 

(물론 나롱이가 입으로 먹는 건 아니기에 먹었다는 표현이 맞는 건가 싶긴 하다.) 


수술에 대한 선택은 보호자인 나의 몫이었지만,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해 주신 선생님이 있었기에 다 가능한 일들이었다.


처음 나롱이가 무지개다리 문턱까지 다녀온 날, 약물에 대한 반응이 보인다며 '안락사'를 고려하는 보호자를 설득해 '조금 더 지켜보자'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선택도 없었을 테니까.


수술 후 나롱이 엑스레이 사진




나롱이가 마취를 잘 버텨준 덕분에 우리가 바라던 데로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 나의 역할이 중요했다.


수술부위는 하루에 2번 소독을 해야 했고, 그 과정도 빨간 약과 알코올 솜, 연분홍 소독약 순서가 있었으며, 식도관도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어 3일에 한 번꼴로 순서에 맞게 소독을 해줘야 했다.


그리고 흉수천자를 하는 방법과 식도관을 통해 사료를 먹이는 방법 등 단순한 듯하면서도 매우 복잡한 일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흉수천자는 바늘을 찌르는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기에 나비침을 꽂을 때 튜브를 닫았다가 열었다가 하는 과정이 조심스러웠고, 꽂기 전 소독과 꽂은 후 소독 등 여러 번 해야 하는 소독 순서가 매우 헷갈렸다.)


그래도 이제 밥과 약을 식도관을 통해 정량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과정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하나하나 눈에 담고, 머릿속에 입력하려 노력했다.




퇴원 후, 집에 와서 식도관을 통해 '완밥'을 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식도관으로 밥 먹는 나롱이. 누나 다리에 얌전히 앉아서 잘 먹는다.


매일 입으로 요령껏 뱉어냈기에 먹는 거 반, 흘리는 거 반 엉망진창이었는데, 드디어 주사기에 준비된 모든 밥이 모두 나롱이의 뱃속으로 들어간 그날이기에..


첫 완밥 후 기념사진


나롱이는 자기가 왜 이런 수술을 한지 안다는 듯이, 매일 누나 다리에 얌전히 앉아 정량의 밥을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집에서 시도한 '첫 흉수천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잘 해냈다.


내 손으로 처음 해본 흉수천자 (나롱이 흉수)


비록, 수술 부위 부종을 방지하기 위해 나롱이는 '과일 포장'이 되었지만, 조금씩 적응하며 몸무게도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에 '수술하길 잘했다' 생각하며 '이제 점점 병원에 가는 시간도 줄일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갔다.


과일 포장된 나롱이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로부터 정확히 수술 11일 후.


나롱이는 다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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