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마취 전, 길고 긴 선택의 시간
수술 10일 후.
나롱이도 어느 정도 '흉관포트'와 '식도관'에 적응할 무렵, 늦은 퇴근 후 만난 나롱이에게서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옷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나롱이의 상태를 요리조리 확인하던 나는 "식도관이 원래 이렇게 길었나?"라는 말과 함께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남편을 바라봤지만, 남편도 식도관 길이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보였다.
어차피 식도관 수술부위 소독과 드레싱을 해야 하는 날이었기에, 확인도 할 겸 조심스레 붕대를 풀었는데, 살이 닿아있는 붕대 부분에 피고름이 엉켜 있던 탓인지, 마지막 붕대 끝부분을 목에서 떼는 순간 식도관이 쑤욱하고 같이 딸려 나왔다.
"어떡해!!! 큰일 났어!!"
나는 다급히 남편을 불렀고, 식도관이 완전히 빠진 건 아니었지만, 5센티 이상은 족히 밖으로 빠져나온 상황이었기에 놀란 마음에 "병원! 병원!"을 연신 외쳐댔다.
항상 어떤 일에도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내 고함에도 나롱이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고, 확실히 식도관이 빠져나온 게 맞다는 것을 확인한 남편은 혹시나 더 빠져나올까 걱정되었는지, 나롱이 목에 다시 붕대를 칭칭 감아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나롱이를 챙겨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날 응급실에는 병원 원장님이 당직 중이셨다.
나롱이 상태를 확인하시고는 ‘식도관이 빠져나온 게 맞다.’고 이야기하셨다.
다행히 엑스레이로 확인했을 때, ‘식도에서 완전히 관이 빠진 건 아니고 살에 꿰매어놓은 부분이 뜯어지면서 원래 밖에 나와있는 튜브가 5센티 정도 더 밖으로 밀려 나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원장님은 ‘식도관은 다시 밀어 넣었고, 최대한 밀려 나오지 않도록 붕대도 탄탄하게 감았다.‘고 하셨다.
덧붙여 ‘살에 연결된 부분만 살짝 꿰맬 수도 있긴 하지만, 나롱이를 아시는 선생님들이 나롱이가 많이 예민하다고 해서 낯선 제가 손을 대는 것보다는 진료 날 오셔서 담당선생님과 상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수술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응급실에서 특별히 조치를 취한 부분이 없으니 진료비는 안 내셔도 된다.’며 감사하게도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다시 안으로 집어넣은 식도관으로 나롱이 밥을 먹인 후 겨우 잠이 들었다.
‘3일 후 진료 예약이 되어있으니, 그때 가서 말씀드리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그리고 눈 뜬 아침.
‘저.. 저게 뭐야...???’
잠이 덜 깬 상태로 내가 본 건 어제보다 더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나롱이의 ‘식도관’이었다.
밖으로 십 센티는 더 튀어나와서는 ‘달랑달랑’ 흔들리며 나를 놀리고 있는 듯했다.
너무 놀란 나는 ‘어제 원장님처럼 다시 밀어 넣으면 들어가려나?’하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식도관에 살짝 힘을 줘 밀어 넣으려 했으나, 웬걸.. 꿈쩍도 안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나롱이의 ’ 머리 털기‘.
머리를 도리도리 탈탈 터니, 식도관은 ‘소금 맛을 본 맛조개’처럼 슈욱 하고 더 튀어나왔다.
“으악!!!!! 병원 가야 돼 병원!!”
아침 8시.
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로 다시 김포에서 반포로, 기가 막히게 출근시간에 딱 맞춰 올림픽대로에 뛰어들었다.
(되는 일이 없군.)
9시 30분쯤 병원에 도착했고, 주차장에 내린 나롱이는 차에서의 답답함을 보여주고 싶다는 듯 사정없이 머리를 털어댔다.
“안돼애애애애ㅐㅐㅐㅐㅐ!!”
머리를 붙잡으려는 나의 손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고, 사정없이 털어대는 통에 나롱이의 식도관은 바닥에 끌릴 정도로 빠져나와있었다.
“젠장... 클났다.”
그래도 혹시나 완전히 빠져버린 건 아닐 거라는 희망에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손으로 식도관을 잡고 나롱이를 안은 채로 병원 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오메 무거운 거..)
담당선생님은 오후 출근이셨기에 데스크에 어제 응급실 상황을 설명드리며, 어떤 분이든 나롱이의 상태를 봐주시길 기다렸다.
나롱이는 짧은 대기 후 처치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후 결국 듣고 싶지 않던 소식을 전달받았다.
“보호자님, 나롱이 식도관이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최대한 다시 안으로 밀어 넣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많이 빠져나와 있어서 밀어 넣는 건 실패했습니다.
다시 수술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상황입니다. “
“네???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순간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그 누구도 원망할 순 없었다.
머리를 탈탈 턴 나롱이 너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습해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선생님에게 “나롱이가 마취 위험이 높은데, 재수술을 하는 게 괜찮을까요..?”라고 물었고, “그 부분은 담당선생님과 직접 상의를 해보신 후 결정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고, 담당선생님은 오후 12시 출근이었다.
나도 오후 3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기다려야지’
그리고 12시. 드디어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이시여, 전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ㅏㅏㅏㅏㅏㅏ(메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