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답은 정해져 있고 질문만 하는 거야.
남편과 나는 같은 일을 한다.
그것도 같은 곳에서.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 종일, 365일, 부부가 같이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일을 하는 장소와 아닌 장소에서의 구분이 생각보다 잘 되기에, 같이 일을 할 때에는 남편으로 잘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집에서 싸우더라도 출근하면 금방 잊어버린다.
(물론, 단순한 나만의 생각일지도.)
그래도 하루종일 붙어있다 보면, 집에서는 '부부'로서, 직장에서는 '일'로서 싸우는 일이 1+1으로 많아질 때도 있다.
그러한 단점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지만, 하루종일 붙어있는 것이 장점이 될 때도 있다.
그건 바로 '서로를 잘 알 수 있다는 것'.
- 무슨 업무를 했는지.
- 무슨 이슈가 있었는지.
- 어떠한 힘든 일이 있었는지.
- 몸이 아픈데도 얼마나 참아내며 일을 했는지.
등등등.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 혹은 아내가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같이 겪다 보니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못 해주는 말 한마디에 서운해서 싸울 때도 있지만 말이다.
(싸움을 유발하는 말투의 지분 90%가 나라는 게 문제.)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서일까.
남편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밥 해줘." 혹은 "밥 차려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반찬 투정도 한 적 없고, 어떤 반찬을 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으며, 한 달 내내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더라도 아무 말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대일밴드*' 남편이다.
*대일밴드 : '대한민국 일등 허즈밴드'를 줄인 말로, 제가 신혼 초에 저희 남편 애칭으로 지은 말입니다.
그 이후, 애칭은 '로또'로 바뀌었습니다. 너~~ 무 안 맞아서. 하하.
학원 강사다 보니 보통 퇴근해서 집에 오면, 빠르면 밤 11시이고, 늦으면 밤 12시가 넘어 새벽에 귀가할 때도 있기 때문에, 단지 '와이프'라는 이유로 '집밥'을 차려달라고 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것 같다.
사실, 결혼을 하면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이 되면 아무래도 여자인 내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끼니를 준비하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그림이 더 자연스럽게 그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은 먼저 나에게 '밥은 어떻게 먹어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 주니 사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밥이 이게 뭐냐", "반찬이 이것밖에 없냐", "너만 일하냐", "내가 밥 하는 기계냐" 이런 말다툼을 전혀 할 필요가 없게, 서로의 에너지를 이런 대화로 낭비하지 않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 마음이 고맙고, 그런 남편이 바깥 음식으로만 해결하는 게 미안하기에, 오히려 '내 손으로 밥을 차려주겠노라' 항상 다짐은 한다.
다짐만 하는 게 문제지만..
출근을 할 때에는, 퇴근 후 '식사 계획'을 세운다.
'오늘 일찍 퇴근하면 (그래봤자 밤 11시), 김치볶음밥이라도 해주겠노라'라고.
막상 퇴근할 때, 남편이 "오늘은 뭐 먹을까?"라고 이야기하면, "음.. 사실 김치볶음밥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ㅠㅠ"라고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럼 남편은 "그래그래~ 맛있는 거 시켜 먹자!" 하며, 혹시나 내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배달 어플을 뒤지며 시킬 음식을 선별한다.
그래도 일요일만큼은, 거창한 요리는 하지 못해도 소소한 집밥이라도, 소소한 간식이라도 해주기 위해 남편에게 물어본다.
나 : "오빠, 좀 출출한 것 같은데.. 볶음밥 해줄까?"
남편 : "응? 좀 출출하긴 한데.. 먹을까? 말까?"
나의 마음 : '아니라고 해.. 안 먹는다고 해..'
남편 : "그래~ 볶음밥 해줘!"
나 : 0o0..... (딱 요런 표정으로) 어??? 먹는다고...?
남편 : (ㅋㅋㅋ 배꼽 잡고 웃으며) "표정 봐~~ 그러면서 왜 해준다고 하는 거야 도대체 ㅎㅎ"
나 : "해 줄 거야~~ 한 15분만 있다가?"
나 : "오빠, 사과 깎아 줄까?"
나의 마음 : '안 먹는다고 해.. 먹기 싫다고 해'
남편 : "사과? 음.. 그래!"
나 : 0o0..... "먹는다고? 아.. 알았어"
남편 : "ㅋㅋㅋ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거야 하기 싫으면서~~"
나 : "깎아 줄 거야~ 지금 보는 것만 다 보고~(드라마 보는 중)"
나 : "커피가 먹고 싶은데.. 커피 내려줄까? 아니면 배달시킬까?"
나의 마음 : '배달시킨다고 해.. 카페에서 시켜 먹고 싶다고 해'
남편 : "음.. 오랜만에 자기가 탄 커피 마시자~ 안 바리 출동!"
나 : 0o0..... "내가 내린 커피 먹는다고? 그 커피 집 맛있지 않나??"
남편 : "그럼 처음부터 시키자고 하지~~ 왜 내려준다 그러는 거야~~"
나 : "해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근데 막상 하려니까 귀찮은 걸 어째...."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쉬는 날이라도 '대접을 해주겠노라'하고 다짐을 하지만, 결국 현실은 질문하는 동시에 '아니'라고 답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숨어있다.
그 마음이 자꾸 이긴다는 게 문제지만, 답이 정해져 있는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고 한없이 귀여워해주는 남편에게 또 고마울 따름이다.
언제까지 웃으며 넘어가줄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아서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역시, '잔소리'보다는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더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도 남편..
오늘도 내가 무엇을 묻는다면,
제발, '아니'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