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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Sep 26. 2024

제발, '아니'라고 말해.

사실, 답은 정해져 있고 질문만 하는 거야.

남편과 나는 같은 일을 한다.

그것도 같은 곳에서.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 종일, 365일, 부부가 같이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일을 하는 장소와 아닌 장소에서의 구분이 생각보다 잘 되기에, 같이 일을 할 때에는 남편으로 잘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집에서 싸우더라도 출근하면 금방 잊어버린다.

(물론, 단순한 나만의 생각일지도.)


그래도 하루종일 붙어있다 보면, 집에서는 '부부'로서, 직장에서는 '일'로서 싸우는 일이 1+1으로 많아질 때도 있다.


그러한 단점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지만, 하루종일 붙어있는 것이 장점이 될 때도 있다.


그건 바로 '서로를 잘 알 수 있다는 것'.


- 무슨 업무를 했는지.

- 무슨 이슈가 있었는지.

- 어떠한 힘든 일이 있었는지.

- 몸이 아픈데도 얼마나 참아내며 일을 했는지.

등등등.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 혹은 아내가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같이 겪다 보니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못 해주는 말 한마디에 서운해서 싸울 때도 있지만 말이다.

(싸움을 유발하는 말투의 지분 90%가 나라는 게 문제.)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서일까.


남편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밥 해줘." 혹은 "밥 차려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반찬 투정도 한 적 없고, 어떤 반찬을 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으며, 한 달 내내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더라도 아무 말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대일밴드*' 남편이다.



*대일밴드 : '대한민국 일등 허즈밴드'를 줄인 말로, 제가 신혼 초에 저희 남편 애칭으로 지은 말입니다.


그 이후, 애칭은 '로또'로 바뀌었습니다. 너~~ 무 안 맞아서. 하하.



학원 강사다 보니 보통 퇴근해서 집에 오면, 빠르면 밤 11시이고, 늦으면 밤 12시가 넘어 새벽에 귀가할 때도 있기 때문에, 단지 '와이프'라는 이유로 '집밥'을 차려달라고 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것 같다.


사실, 결혼을 하면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이 되면 아무래도 여자인 내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끼니를 준비하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그림이 더 자연스럽게 그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은 먼저 나에게 '밥은 어떻게 먹어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 주니 사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밥이 이게 뭐냐", "반찬이 이것밖에 없냐", "너만 일하냐", "내가 밥 하는 기계냐" 이런 말다툼을 전혀 할 필요가 없게, 서로의 에너지를 이런 대화로 낭비하지 않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 마음이 고맙고, 그런 남편이 바깥 음식으로만 해결하는 게 미안하기에, 오히려 '내 손으로 밥을 차려주겠노라' 항상 다짐은 한다.


다짐만 하는 게 문제지만..




출근을 할 때에는, 퇴근 후 '식사 계획'을 세운다.


'오늘 일찍 퇴근하면 (그래봤자 밤 11시), 김치볶음밥이라도 해주겠노라'라고.


막상 퇴근할 때, 남편이 "오늘은 뭐 먹을까?"라고 이야기하면, "음.. 사실 김치볶음밥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ㅠㅠ"라고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럼 남편은 "그래그래~ 맛있는 거 시켜 먹자!" 하며, 혹시나 내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배달 어플을 뒤지며 시킬 음식을 선별한다.


그래도 일요일만큼은, 거창한 요리는 하지 못해도 소소한 집밥이라도, 소소한 간식이라도 해주기 위해 남편에게 물어본다.


나 : "오빠, 좀 출출한 것 같은데.. 볶음밥 해줄까?"

남편 : "응? 좀 출출하긴 한데.. 먹을까? 말까?"

나의 마음 : '아니라고 해.. 안 먹는다고 해..'

남편 : "그래~ 볶음밥 해줘!"

나 : 0o0..... (딱 요런 표정으로) 어??? 먹는다고...?

남편 : (ㅋㅋㅋ 배꼽 잡고 웃으며) "표정 봐~~ 그러면서 왜 해준다고 하는 거야 도대체 ㅎㅎ"

나 : "해 줄 거야~~ 한 15분만 있다가?"


나 : "오빠, 사과 깎아 줄까?"

나의 마음 : '안 먹는다고 해.. 먹기 싫다고 해'

남편 : "사과? 음.. 그래!"

나 : 0o0..... "먹는다고? 아.. 알았어"

남편 : "ㅋㅋㅋ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거야 하기 싫으면서~~"

나 : "깎아 줄 거야~ 지금 보는 것만 다 보고~(드라마 보는 중)"


나 : "커피가 먹고 싶은데.. 커피 내려줄까? 아니면 배달시킬까?"

나의 마음 : '배달시킨다고 해.. 카페에서 시켜 먹고 싶다고 해'

남편 : "음.. 오랜만에 자기가 탄 커피 마시자~ 안 바리 출동!"

나 : 0o0..... "내가 내린 커피 먹는다고? 그 커피 집 맛있지 않나??"

남편 : "그럼 처음부터 시키자고 하지~~ 왜 내려준다 그러는 거야~~"

나 : "해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근데 막상 하려니까 귀찮은 걸 어째...."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쉬는 날이라도 '대접을 해주겠노라'하고 다짐을 하지만, 결국 현실은 질문하는 동시에 '아니'라고 답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숨어있다.


그 마음이 자꾸 이긴다는 게 문제지만, 답이 정해져 있는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고 한없이 귀여워해주는 남편에게 또 고마울 따름이다.


언제까지 웃으며 넘어가줄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아서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역시, '잔소리'보다는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더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도 남편..


오늘도 내가 무엇을 묻는다면,


제발, '아니'라고 해~~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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