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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Oct 07. 2024

보라색 상자.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소중한 상자.

오늘 나롱이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


나롱이를 맡기고,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막돼먹은 영애씨'를 정주행 하고 있었다.

(지금 N번째 정주행 중)


1시간 정도 지났을 까.


나롱이가 진료를 마치고 나왔고, 나는 화장실이 급해 나롱이를 데리고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나롱이가 다니는 병원은 화장실 가는 길에, 면회실이 쭉 있는 구조인데, 오늘따라 면회를 하는 강아지들이 많았다.


불이 켜져 있는 면회실을 지나면서 '어떤 강아지가 아파서 입원해 있나'하고 살짝 곁눈질을 했는데..


그곳엔 강아지가 아닌 '보라색 상자'가 놓여있었다.


순간 심장이 '쿵'.


혹시 잘못 본 것이길 바라는 마음에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다시 조심히 면회실을 봤는데, 그곳엔 여전히 '보라색 상자'가 놓여있었다.


눈이 벌게진 보호자님과 눈이 마주치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바로 고개를 돌려 옆 면회실을 보게 되었는데.. 그 면회실에도 '보라색 상자'가 놓여있었다.


다시 한번 더 심장이 '쿵'.


그리고, 3초도 되지 않아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롱이와 병원에 다니면서, '보라색 상자'와 여러 번 마주쳤다.


그때마다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고, 그 보호자님의 마음에 동화되어 눈물을 흘렸다.


그 '보라색 상자'는 다름 아닌, 강아지별로 여행을 간 반려견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상자이기에..


그 상자를 끌어안고 오열을 하는 보호자님들을 보면, '우리 나롱이도 언제 강아지별에 갈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그런데 오늘은 강아지별에 간 강아지가 2마리라니..


'나롱이는 무지개다리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나와 1년을 함께 보내고, 4일 전 생일파티도 했는데..'


'이 아이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사랑하는 주인을 두고 머나먼 여행을 떠난 걸까..'


'사랑하는 주인은 아직 저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보내 줄 마음이 없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가버린 걸까..'


'저 모습이 언젠가 나의 모습이겠지..?'


슬픈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펼쳐졌다.


그 와중에 귀를 팔랑팔랑 거리며, 씩씩하게 걷는 나롱이를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 안 떠나는 거 맞지?'

'누나 옆에 더 오래 있어 줄 수 있는 거지?'

하면서도..


'우리 나롱이도 많이 아픈데.. 언제든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당장 내일이라도 이상할 게 없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리고, 오늘도 또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제발, 제 곁에서 떠나게 해 주세요.


라고.


그것만큼은 꼭 이루어지길 오늘도 바래본다.


그리고, 오늘 만난 '보라색 상자' 안의 소중한 아가들이 강아지별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그 어느 때보다 바래본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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