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인스타를 왜 안하냐고 물은 적 있다.
“너 태그하려 했는데 없더라고. 왜 인스타 안해?”
“그냥”
“그냥”이라는 대답에 좀 더 복잡한 마음을 숨겼다. 관계를 위한 인스타가 과연 ‘어떤’ 관계를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은 적 있었다. 나는 인스타의 여러 기능이 관계를 '아프게' 한다고 결론지었다. 대표적 사회 관계망인 인스타가 ‘좋은’ 관계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랬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은 질투와 비교고, 그 안에서는 연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고. 그 정체성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게 인스타였다. 딘의 인스타그램 노래를 들어보라.
잘난사람많지/누군어딜놀러갔다지/좋아요는안눌렀어/나만이런것같아서/...
사실 이런 예시도 필요없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감정이다. 피드를 새로고침 하면 멋진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좁게는 친구부터 넓게는 연예인까지 다양하다. 나도 저길 가봐야지, 오 저것도 멋지잖아? 라는 생각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질투와 비교의 서사가 시작된다. 이런 질투와 비교가 결국 나의 관계망을 망친다.
✓청담동 유명 식당에서란 위치를 찍고, 어떤 고급호텔에서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업로드 된다. 그런 과시는 질투를 사고, 비교의 과정을 거쳐, 또 다른 하위 질투의 형태로 퍼진다. 단순히 고급 식당, 유명한 관광지의 위치만 공유되는 게 아니라, 질투도 함께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공간뿐만 아니라 명품과 같은 물질, 심지어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연대하려면 질투와 비교를 멈춰야 한다. 연대는 ‘모두가 다 같이 잘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인스타는 ‘모두가 잘 사는 한 장’이 아닌 '나만 잘 살고 있는 한 장'을 보여주는 구조다. 내가 질투기반서비스를 잠시 꺼둔 이유다.
그런데 내가 인스타를 떠난 사이 SNS을 통한 선한 영향력이 유행이 됐다. 선한 영향력은 연대를 위한 가장 큰 힘이기도 한데 말이다. 사실 인스타는 질투와 비교 그리고 연대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꽤나 좁은 생각을 가졌던 내가 SNS를 다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