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일기] 기억을 좇지 않아야 더 좋은 기억이 된다

일본 교환학생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

by 동작에서


벌써 2년 전이 되어버린 일본 유학생활을 더듬더듬 추억하며 써내려가는 '더일기'입니다.
힘들어 운 날이 더 선명히 남아있지만, 그중 활짝 웃은 순간을 찾아 적어보려합니다.
기억이란게 미화를 좋아하는 놈이라 전부 웃은날로 기억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사진파일을 열어야지 글이 되겠지요.
자 더듬더듬 사진을 골라봅시다.
편집자주




2019년 5월 골든위크의 마지막 날에 간 국영 히타치 공원입니다.

순수 덴샤로 왕복만 5시간이 넘어 갈까말까 전날까지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것에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일본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 저를 아침에 내보내더군요.

날씨는 요상하게 추웠고, 먹구름이 끼고, (저건 보정한겁니다), 사진한장 찍어줄 사람 없이 철저히 혼자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바라키 국영 히타치 해빈 공원-네모필라



이건 자의가 아니라 어디로 가야할지 해메다 발견한 꽃들이었습니다.

국영 공원이 진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커서 다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네모필라가 가장 유명하지만, 장미, 튤립 등 각종 꽃들이 제 구역을 이루며 뽐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늦어서 결국 뚜벅이로 얼마 못돌아봤지만, 혹시 가신다면 가자마자 따릉이를 찾으세요.

다시 꽃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실 이름도 모릅니다.

근데 꽤 오래 지켜봤고,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 다양한 꽃의 색깔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종자를 뿌려놨길래 색깔이 이렇게도 다양하지? 비슷해 보이는데 다른 종류들인가? 근데 왜 이렇게 섞어서 키워놨지?

아마 '네모필라존', '장미존' 이렇게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 하나의 구역에 있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 규칙 없이 들쭉날쭉 각종 색깔로 자유롭게 피어 있는 꽃들은 셔터를 들이밀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비슷한 사진이 너무 많다


제가 더듬더듬 2019년도 사진을 찾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참 담으려 노력했구나.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먹고 난 쓰레기까지 사진을 찍어놨더라구요. 찍은게 수천장이 됩니다.또 보조배터리 사용을 잘 안하는 타입이라 배터리가 다 닳아서 찰나라도 놓칠까봐 전전긍긍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네모필라 참 예뻤지'란 기억을 꺼내보고 싶어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또 찍어달라 부탁하느라

그때 기억은 '사진 찍느라 힘들었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그래서 요즘에는 사진보다 눈으로 담으려 합니다. 아니면 공책을 꺼내서 글이나 그림으로 남깁니다.

공책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손으로 직접 백지를 채우는거 은근 재밌어요.

셔터 누르고, 자판 치는 거 저도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편하면 기억에 오래 안남습니다. 어쨌든, 뭐든 간단히 하려고 합니다. 요즘엔 밖에 나가면 배터리가 남아 돕니다. Simple is the best!


"행복을 좇지 않아야 오히려 행복해진다"


갑자기 왜 노자의 말이 생각나죠. 이 상황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사진으로 기록된 기억이 행복이라면 그걸 내려놔보세요. 오히려 얻는게 더 클 수 있습니다.

좋은 기억도 무리하게 좇지 않아야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자커피(SAZA)라는 곳입니다.

히타치 공원에서 나오고 배가 고팠지만 커피가 마시고 싶어 카페를 택했습니다.

아마 돈이 모자라서 엄마에게 전화해 카드를 써도 되냐 물어봤던거 같습니다.

차비가 편도 1800엔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더듬었으니 정확하지는 않아요.

주문한 것은 계절 메론 케이크, 블랙 커피. 다 해서 1500엔 정도.

저 크림이 정말 가볍고 부드러웠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벼웠지만 맛은 진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만화책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서 혼자 먹었습니다(ㅋㅋ).

지금 기억이 떠오르는 건 화장실이 진짜 좋았다는 거랑 제 맞은편에 앉은 커플입니다.




화장실 가는 길목에 찍어둔거 같은데, 화장실도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바라본 전경


맞은편 커플은 사실 부러웠던 걸 겁니다. 저보다 나이는 훨씬 많은 부부일지도 모르는 커플이었습니다.

일단 파르페 블랙커피, 케이크와 블랙커피를 한개씩 먹고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다 먹고 커피를 한잔 더 시키려 하기도 했습니다. 무려 한잔에 800엔짜리를!)

두명이서 카페를 가면 흔히 커피는 각각, 케이크는 한개 시켜서 나눠먹는데,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 커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일본인이 그랬습니다.


어쨌든 하고 싶은건 많지만 돈은 없는 유학생의 시각에서 부러운 건 사실 그들의 여유였습니다.

같은 걸 먹고 있어도 저는 돌아갈 차비 걱정을 해서, 조급했어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노느라 조급했던 저의 유학비를 대준 부모님게 감사를 표합니다.

좋아하는 카페/식당에서 가격표 안 보고 혼자 먹고 싶은 거 질릴 때까지 먹어보고 싶습니다.

회사에 들어가 첫 월급을 타면 해보겠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집에 가려고 카페에서 나와 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덴샤를 놓친건지 분명 지금 들어와야 하는데 역에 도착하니 다음열차 40분 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

40분 동안 뭐를 하지 하다 밥을 먹기로 합니다.

열차를 또 놓치면 진짜 큰일나니 역 근처에서, 메뉴는 간단한 카츠동으로 합니다.

굉장히 허름한 집이었는데,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 빙의해서 당당히 들어가 음식을 기다렸습니다.

한 입.

진짜 왠지 모르겠는데, 너무 비렸습니다. 이걸 먹고 한동안 돈카츠는 입에도 못댔습니다.

손님은 저뿐이고 인자한 인상의 주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티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주인이 제가 남긴 걸 보면 슬퍼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그래도 먹은게 채 반이 안됐습니다.

허름한 집=숨겨진 맛집. 이 생각이 깨진 저녁 식사였습니다.



많은 걸 썼지만, 네모필라를 보러 혼자 이바라키에 간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열차 사고로 지연된 일정에도 계획했던 대로 발걸음을 옮길 정도로 생각보다 대담하고, 4명의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용기가 있고, 친구들을 생각하며 기념품을 고르느라 1시간을 써버릴 만큼 따뜻한 제 모습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거를 너무 좋아합니다.

또 어떤 모습을 발견할 지 모르기 때문이죠.



- 2019년 5월 골든위크 마지막 날을 더듬어 적다.











작가의 이전글[동작에서]너무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