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칼럼] 콜센터

건강보험공단 파업 논란에 관한 생각

by 동작에서

내가 콜센터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다. 나는 우리의 퇴근시간이 다른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날은 세 명이 40분에 짐을 챙겨 50분에 회사를 나갔고, 다음날은 그 수가 바뀌었다. 이유도 모른채 매일 정시 퇴근하는 내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조기퇴근 대상자가 된 날에도 사수에게서 이유를 듣지 못했다. 조기퇴근 무리에 끼게 되었을 때 비로소 콜수에 따라 퇴근 시간이 차등으로 정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우리들끼리의 이야기라 기준이 정확하지 않았다. 서로의 콜 수를 따져 물으며 대충 120콜이 최저한선이라는 걸 짐작했을 뿐이다. 첫 교육때 하루에 200통이 넘는 전화를 받다 '죽을뻔'했다는 교육 선생의 말이 이해가 됐다. 퇴근 시간이 아닌 봉급이 걸려있는 선생은 '무형의 기준'과 싸우느라 그렇게 지쳐있었던 거다.



조기퇴근의 원리를 알고 나니 행동이 달라졌다. 일단 내 이름을 두 글자로 소개했다. 1초라도 줄여 더 많은 콜을 받겠다는 심산이었다. 정신은 귀보다 눈에 있었다. 고객의 목소리는 통화시간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선명해지기도 흐려지기도 했다. 좀 길어진다 싶으면 "전문 상담원을 연결해드린다"는 멘트를 애용했다. 이 멘트는 만인의 사랑을 받았는데, 내가 연결해준 어떤 '전문 상담원'이 또 다른 익명의 '전문 상담원'을 연결하는 식이었다. 전문 상담에 대한 고객의 기대는 전문가가 없는 콜센터 안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전문가가 될 시간도 없었다. 전문가를 말살시키는건 조기퇴근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기피 대상이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결핍'은 시스템 속에서 '잘못'으로 둔갑했다. 기기에 익숙하지 않고, 귀가 불편한 이 자연스러운 노인들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콜센터에서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남았다. 노인을 상대하느라 써버린 10분과 젊은이를 상대하느라 쓴 1분이 퇴근 앞에선 같은 값으로 매겨진 탓이었다. 내가 이 등가성의 부조리함에 눈을 뜬건 한 노인의 답답함을 눈이 아닌 귀로 들었을 때다. 그 이후 성과를 양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며 꽤 많은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조기퇴근 시스템을 바꾸진 못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딘가에서 기피되어 내게 연결된 노인들의 고민을 조금 더 길게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최근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파업 소식을 들으니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 갈등을 보고 있자니 회사 밖에 있는 이들의 말이 맞는 것도 같고, 회사 안에 있는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공정싸움의 특징이 지독하다는 걸 또 한번 느낀다. 그래도 하나만큼은 전적으로 동감한다. 시스템의 질이 하락한다는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늦어질수록 답답함을 호소하는 노인이 늘어날 거라는 말이다. 평균 120콜에, 180콜을 받으면 상점을 주고, 콜 수 상위 3%에게 상품권을 지급해 직원을 다루는 시스템은 필패한다는 것도 장담할 수 있다. 인원은 적고, 고용은 불안한데 여전히 좋은 상담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 고객의 자연스러운 무지와 결핍을 죄로 만드는 하청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콜센터에 전문가가 필요하다. 공정싸움은 이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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