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치인 탄생에 대한 생각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현자들도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프리기아의 왕이었던 고르디우스는 수도 고르디움 기둥에 복잡한 매듭을 매어 놓았는데, 이 매듭을 푸는 이가 아시아를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어느날 고르디움을 지나던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선 망설임 없이 칼을 꺼내 매듭을 잘라 버렸다. 아무도 건들이지 못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버린 것이다. 알렉산더는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아시아 정복길에 올랐다.
현재 우리 사회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공정”이다. 세대, 성별, 일자리, 교육, 부동산 등 공정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정의 개념이 달라지기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매듭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기대를 모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평등, 과정공정, 결과정의>도 이 매듭을 풀지 못했다. 해결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됐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취준생까지 분노하게 만들었고, 공정 매듭은 더 꼬였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도 공정이다. 모든 대선 주자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 하는데, 구체적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난제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듭을 자르겠다는 이가 등장했다. 이준석이다. 오직 실력주의가 공정이란 난제를 풀 수 있다 말하고, 각종 할당제 폐지를 주장한다. 공정 문제를 ‘풀어’보려 했던 기존의 문법을 깨트린 것이다. 속시원히 공정 매듭을 잘라버리겠다는 이준석에게 환호한 이들은 그를 당대표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이준석 식 해결 방법은 만능이 아니다. 공정 문제가 진짜 난제인 이유는 구조적 문제 탓인데, 공정의 방점이 경쟁에 찍혀있으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모른척 할 수밖에 없다. 공정의 목표는 경쟁이 아닌 삶이다. 차별받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분열되지 않은 삶. 이 점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만드는 실력주의 공정은 공정의 본질을 해친다고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매듭을 자른다는 이들은 환호받았지만, 알렉산더 대왕도 매듭 자체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수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이준석의 공정은 환호받고 있다. 심지어 정치계에서 이준석 식 문제 해결 방식이 벤치마킹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여가부 폐지를 꺼내든 것이 그 예다.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주장만 있을 뿐 성폭력 문제, 유리 천장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없다. 남성들이 주장하는 불공정이란 또 하나의 매듭을 그냥 자르겠다는 것이다. 매듭을 잘라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어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잘라, 해결했다는 착각을 주는 정치 공학이 유행중이다. 이게 바로 이준석 현상이다. 매듭을 간편히 자르겠다는 정치인과 이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세대교체, 따릉이, 젊치인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진짜 이준석 현상이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