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보고 유난 떤다 흉보던 나 반성해
아이를 낳기 전엔 노키즈존을 찾아다녔다. 제주도로 태교 여행을 가서도 노키즈 호텔에서 지냈다. 뉴스에서 노키즈존을 두고 차별이다, 역차별이다 이야기할 때는 '애랑은 키즈카페 가면 되지'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른바 맘충 소리를 안 듣기 위해 애썼다. 외출할 땐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으려고 아이 음식 잘라줄 가위부터 오만가지 살림살이를 다 가지고 나갔다. 아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배려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양보하려고 눈치도 많이 봤다.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할 땐 맘카페에 드나들지 않는다는 걸 꼭 이야기했다. 그래야 상식 선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 키우면서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하는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등원 버스 태우는 시간에 늦어 저 멀리서 숨이 차도록 뛰어 오는 사람, 아이가 유행하는 전염병마다 모두 다 걸린다며 돌보느라 진이 빠졌다는 사람, 아이가 둘 또는 셋이라 키우기 힘들다며 하소연하는 사람, 마트나 백화점에서 아이가 진열된 물건을 함부로 해 곤란을 겪었다는 사람 등... 난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좀 더 부지런하게 준비하지, 애 손 닦고 양치만 잘해도 전염병에 덜 걸릴 텐데, 아이 키우기 어렵다는 건 요즘 세상 누구나 아는 건데 왜 둘고 낳고 셋도 낳았을까, 아이가 산만하게 굴면 호되게 혼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아닌가... 나는 아이 키우느라 앓는 소리 하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날을 세웠다. 돌아보면 난 정말 인정머리 없을 뿐 아니라 뭘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나 진짜 나쁜 아줌마였네...)
아는 사람이 우리 아이를 두고 많이 컸다, 잘 컸다 이야기하면 나는 '우리 애는 밭에 심어둬도 알아서 클 애예요' 답했는데, 내 마음속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잘 씻기고 세끼 건강하게 먹이고 육아서에 나오는 걸 흉내만 내도 이만치 아이가 자랐다는 믿음이 있었다. 사실은 여태 운이 좋았고, 내 양육태도보다는 아이의 유순한 성격이 큰 몫을 했다는 걸 간과했다.
두어 달쯤 불안을 지나고 지금 아이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정상이다. 전처럼 유치원 버스에 재빨리 올라타 창밖으로 손을 흔들고 학원 문 앞에 데려다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배 아프다, 무섭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잘한 건지 모르겠지만 상담이나 심리검사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간의 힘, 우리 세 식구가 참고 견딘 끝에 위기를 극복해 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아이의 고통, 나의 괴로움에 공감해 주고 걱정해 준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고맙다. 나는 밖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면 한숨을 푹푹 쉬며 대체 왜 저럴까 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내 아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해 주었다. 지난 내 행동에 비추어 보면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까. 긴장 없이, 겁 없이 아이를 키웠는데 지난 두어 달간 육아 무서운 걸 제대로 경험했다. 입학 시기에 맞춰 육아 휴직에 들어가는데 전보다 아이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아이에게 더욱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다정한 태도를 갖기 위해 마음 수련을 하리라, 나 스스로 말하자니 좀 웃기지만 그런 다짐을 한다. 내 아이는 물론이고 육아 동반자인 남편, 이웃, 내 친구 그리고 아이의 친구들, 내 부모님과 남편의 부모님과 내 형제, 남편의 형제 기타 등등 이 지구 모든 사람들을 이해해 봐야지. 육아 고충과 고통으로 시작해 착하게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견디는 동안 굉장히 애를 먹었지만 지나고 보니 희한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