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잘 할 수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어

내게 최면을 걸어

by anna

솔직히 말하면 아이를 키우며 내 한계를 여러 번 확인했다. 20대엔 노느라, 30대엔 야근하느라 더러는 밤을 새도 팔팔했는데 잠 없는 아이를 키우면서는 체력의 한계를 자주 실감했다. 신생아 때는 분유를 타다가 쏟아지는 코피를 손으로 받은 적도 있다. 정신력 또한 굳세지 못했다. 딱히 육아관, 교육관이랄게 없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에 휩쓸려 태도를 분명히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게 좋은 거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여태 아이를 키웠다. 경제력은 글쎄, 누가 왜 둘째를 낳지 않느냐 물으면 '제 경제력으로는 하나까지만 가능해요'하고 답하곤 한다. 아이 키우는데 있어 체력, 정신력, 경제력 모두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분리불안과 우울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면서는 내 인내심의 바닥을 봤다. 떼쓰는 일곱 살 아이 앞에서 어찌나 화가 치솟던지, 내가 얼마나 별로인지를 절실히 깨닫고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 아이가 눈물을 보이며 나와 안 떨어지겠다고 할 땐 당황했다. '얘가 왜이래'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며칠 반복되니 짠한 마음보다도 화가 먼저 났다. '네가 유치원에 가야 엄마도 일을 한단 말야. 왜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해?'라고 마음속으로만 수도 없이 고함을 쳤다. 루틴이 무너져 오는 불안감, 육아도 회사일도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는 스트레스, 같은 유치원과 학원을 보내는 친구들과 엄마들 앞에서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몰려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쩌다 한 번씩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술을 즐기지 않는 나인데 아이가 이른 하원을 하고 집에 올쯤이 되면 생전 안 마시던 소주 생각이 났다.


얼마 지나고 나서야 아이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돌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다니고, 다섯 살때부터는 유치원 종일반에서 살았으니 쪼그만게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는 생각을 그제야 했다. 독립적인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핑계로 너는 너, 나는 나 했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긴 너무 어려 뒤늦게 탈이 났나보다 싶었다.


그래도 울음 끝이 긴 날엔 화가 났다. 제발 그만해, 대체 언제까지 이럴래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내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다. 하지만 늘 생각했다. 어디선가 오은영 선생님이 날 보고 있다고. 마음이 부글부글 끌어오를 땐 입을 열기 전에 '음' 하고 작게 소리내며 숨을 골랐다. 그렇지 않으면 '야!' 소리가 우렁차게 새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좀처럼 예상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앞에 두고 윽박지르고 싶을 때가 여러 번이었지만 그럴때마다 '네가 잘 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어', '네가 용감하고 씩씩하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어'라고 주문을 외우듯 이야기 했다. 사실 그 말은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넌 참을 수 있어, 아이가 진정될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게 되어 있어.' 믿는 종교가 없지만 성당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을 지경이었다. 목탁이 있었다면 매일 두드렸으리라 생각했다.


세달쯤 지난 지금, 아이의 컨디션은 제법 좋아졌다. 유치원 선생님께 농담조로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다. 줄넘기 학원 문앞에서 내 손을 꼭 잡고있다가 훌쩍이며 들어가는 날은 있지만 일주일에 한번쯤이니 견딜만하다. 아이도 어딜 갈 때면 '나 안 울 자신이 있어!'라고 말하는데 이게 진짜인지,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건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진다더니, 그 시간동안 내가 한 노력은 무얼까 생각해보면... 솔직히 말해서 화를 참는 일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이른 하원을 해서 간식을 챙겨야 하고 일과 육아를 동시간에 해야 하고 이런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일일뿐, 가장 크게 에너지를 쏟은 건 거친 내 감정을 가만히 속으로 삯히고 수도 없이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안의 고함을 꿀꺽 삼키는 일이었다. 아이도 나도 스스로 주문을 외우고 최면을 걸며 어찌저찌 불안을 조금씩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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