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의 조언,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이 키우면서 내가 가장 경계한 일은 맘카페를 드나드는 것이다. 병원, 학원 등 동네 안 정보를 알아볼 땐 지역 맘카페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양육 태도와 관련해서는 온라인보다는 책 또는 지인들의 경험담과 조언에 의존해 왔다. 왜냐하면 맘카페에는 너무나 많은 견해가 있었고, 내게 도움보단 가르침을 주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맘카페를 경계한 이유는 이런 말, 저런 말에 팔랑거리는 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랬더라, 저랬더라 하는 글을 읽다 보면 검색해보아야 할 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러다 보면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마저 잊고 마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물 등원이 시작되고 얼마간은 유치원 선생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집 밖에서 가장 오랜 시간 아이를 대면하는 분이기 때문이었고, 그간 아이를 잘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그야말로 무한한 신뢰가 있었다. 오죽하면 아이가 눈물이 흐르는 이유를 가장 먼저 털어놓은 대상이 유치원 선생님이었으니 우리 부부로서는 무척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워낙 자상한 분이라 내가 여쭤보지 않아도 아이 컨디션을 공유해 주신다며 먼저 연락을 주시곤 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조금 나아 보였다고, 또 다른 날은 좀 더 눈물을 많이 보였다고. 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아이의 마음도, 내 마음도 안심시켜 주셨다. 하원 시간을 앞당겨보면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조언도 아이의 불안을 덜어주는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제안하시길, 유치원에서 엄마 생각이 날 때 꺼내볼 수 있는 사진이나 편지 또는 물건을 넣어 보내는 게 어떠냐 하셨다. 나는 사진은 어쩐지 돌아가신 분 것 같고, 딱히 나를 떠올릴만한 물건이랄 게 없어 작은 메모를 아이 가방에 넣어 보냈다.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은 아니고 그저 웃으라는 의미에서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 포켓몬스터 이야기 같은 걸 적어 넣었다. 아이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메모를 가방에 넣어 보낸 날, 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일은 편지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 편지 때문에 더 눈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선생님께 후기를 공유했더니 원에서 일과 중에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 보겠다고 하셨다. 어떤 방법으로든 도움을 주시려고 애써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학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런 시기가 있다고 하셨다. 아이가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발달 시기상 그럴 수 있다고들 했다. 어떤 선생님은 집에 누가 돌아가신 분이 있냐고, 아이 동생이 생겼느냐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사라진 사람도, 생겨난 사람도 없다고 답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 역시 이런 때가 있는 거겠죠 하고 말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가 문 앞에서 울고 수업 도중에 이탈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어오지 않았다. 애들 이러는 게 별일이 아니고 빈번한 일이구나 싶어 그 또한 내 불안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됐다.
우리 부부, 유치원 선생님, 학원 선생님이 아니어도 아이의 눈물 등원을 매일 지켜보는 분들이 있었다. 등원 버스를 같이 태우는 엄마들이었다. 대체로 나와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아침마다 울고불고 소란을 피운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딱하다는 마음으로 우리 모자를 대해주는 게 고마웠다. 어떤 엄마는 내게 고생 많으시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윈더윅스가 일곱 살에도 올 수 있나 보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상심한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다. 또 어떤 엄마는 가까운데 아동심리상담 센터가 있는데 후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전해줬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었다.
한 달 쯤이 지나서도 아이의 컨디션이 썩 좋아지는 것 같지 않자 그때부턴 오랜 친구들에게 전화로 상담을 부탁했다. 상담은 핑계고 반은 넋두리고 신세한탄이었다. 친구들은 내 성격과 양육태도, 우리 부부의 성향, 아이의 기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심 끝에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그 무렵 내 고민의 가장 큰 화두는 '이 상황을 우리 가정 안에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아이의 괴로움을 빨리 끊어내주어야 하는 것인가'였다.
한 친구는 미술치료 이야기를 했다.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고 주변에서 지켜봤는데, 아이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꽤 효과가 있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미술치료를 하느라 낯선 환경에 아이를 데려다 놓기보다는 아이를 좀 더 믿고 기다려주면 어떠냐고 했다. 미술치료를 받은 지인이 말하길, 일주일에 한 번씩 4회 받은 치료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그저 시간이 한 달쯤 지나서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풀배터리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풀배터리 검사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어보았는데, 아이의 기질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목적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런 걸 알아두면 아이 마음을 헤아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뜻이었고, 실제로 그 친구의 아이가 그 검사를 받아보았기 때문에 몹시 설득력이 있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친구는 커피 쿠폰을 보내왔다. 엄마의 마음은 엄마가 아는 거 아니겠냐며, 힘내라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많은 격려와 위로, 조언이 있었고 우리 부부는 주변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새겨 들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가려내고 집중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먼저 시간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유아기 육아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마주하기 마련이라는데, 우린 아이 일곱 살이 되어서야 그 경험을 했고 당황하고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기보다는 의연하게 대처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식의 사고는 절대 하지 말자 다짐했다. 전보다 더 세심하게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어두고 있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아이의 컨디션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여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이 키우는 게 어렵고도 무서운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