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남편과 나는 성향은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취향이 다르달까, 정반대 혹은 아주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끼리 끌리기 마련이라 하지만 우리는 딱 어느 쪽이다 말하기 어렵다. 둘 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눈에 띄지 않는 캐릭터인 동시에 나름대로 고집을 부리는 지점이 각자 있고, 그 와중에 큰 마찰이나 갈등은 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10년 조금 넘게 같이 살면서 '음, 정말 안 맞아.'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굳이 서로의 고집을 꺾거나 반드시 설득해야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큰 소리 내지 않고 차분하게 잘 지내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남녀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따지자면 남편은 한없이 다정하고 난 때에 따라 단호하거나 냉정할 때가 많았다. 밥을 먹을 때 난 아이에 밥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며 골고루 먹으라고 타이르는데 그치는 반면, 남편은 밥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는 것까지 했다. 스스로 먹게 내버려 두라고 하면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밥을 떠먹여 주겠느냐고 대꾸했다. 길을 걷다가 아이가 다리 아프다 투정하면 나는 조금 더 참고 가자고 아이를 달래고, 남편은 당장 업히라고 등을 내주었다. 장난감이나 간식거리를 사주는 것도 남편이 더 쉽게 허락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로 나는 대문자 T 엄마고, 남편은 아들바보 혹은 아들등신 정도로 통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아이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이른 하원을 결정하고 나니 나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몸을 움직여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난 데다가 회사 업무를 동시에 해야 하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정신이 없고 체력적으로 부족함을 느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전보다 더 자주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에 있는 동안은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눈물바람으로 등원하고 일찍 하원해 집에 오게 되니 안부를 묻는 연락 무척 잦았다. 오늘 기분은 어때 보이는지, 유치원에서는 잘 지냈다고 하는지, 간식거리는 어떤 걸 챙겨주었는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등등... 남편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어오는 것이었는데 얼마간 반복되자 나는 성가시기도 하고 짜증스러워지기도 했다. 조금 뾰족해져서 '궁금하면 직접 와서 보시라', '아이 스케줄이 달라지면서 내 일상이 달라졌지, 당신은 뭐가 달라졌나, 기분?' 같은 말이 가슴에서 솟구쳤지만 아이 시중드는 와중에 남편과 갈등까지 일으킨 수 없어 그만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주말엔 남편이 아이와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집에서 같이 놀아주고, 레고방에도 데려가 주고, 아이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짠한 마음이 들었는지 해달라는 걸 대체로 해주는 편이었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줄 땐 내가 몸이 편하고 아이도 기분이 좋아 보이니 그저 내버려 두었는데, 일요일 오후가 되면 저렇게 오냐오냐 하다간 월요일 아침 등원길엔 큰 재앙이 닥칠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그러자 다정한 남편의 태도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져 도끼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가 봤으면 잘해줘도 난리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남편은 나름대로 내 눈치를 꽤나 봤다. 일 때문에 퇴근이 조금 늦어지면 서둘러 가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어쩌다 회식을 하게 되면 그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놨다. 주말 아침엔 먼저 일어나 안방 문을 조심스레 닫고 거실에 나가 아이와 단둘이 놀아주었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거나 외식하자는 제안을 자주 했다. 나는 육아에 지쳐 날카로워질 때마다 남편의 그런 행동을 생각하며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충실히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으며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괴로운 적이 없었는데, 이 시간 동안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세 가족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기 위해서는 어른 둘이 맡은 몫을 잘해야 하고, 서로 적극적으로 격려해야 지친 마음을 달래서 영차영차 기운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고,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