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시부터 배가 아프다

종일반 중도하차하고 3시 반에 집에 오는 내 아들

by anna

아이의 등원 거부, 분리불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침에 나와 떨어지는 순간 폭발적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유치원에서도 툭하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왜 우느냐고 물으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일과 중에 친구들과 다 같이 무얼 하는 시간, 아주 흥미 있어하는 활동을 하는 때가 아니면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고 다른 교실로 이동을 해야 한다거나, 잠시 주어지는 자유 시간에는 어김없이 입을 크게 벌리고 꺼이꺼이 운다고 했다. 어느 날은 우연히 마주친 같은 유치원 친구 엄마가(평소 말을 섞는 사이가 아닌데) '이야기 들었어요'하며 어색한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온종일 유치원에서 사는 애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보이니 다른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띈 모양이었다.


유치원 선생님과 키즈노트 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부족해 몇 번 통화를 했는데, 아이가 오전 시간보다는 오후 시간에 더 기분이 안 좋아 보이고 특히 정규 수업시간 뒤로 이어지는 방과 후 수업 시간에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훌쩍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시간표는 크게 네 개로 구분되어 있다. 아침부터 2시 반까지는 유치원에 다니는 모든 친구들이 참여하는 정규 수업이 있다. 그 뒤로 한 시간은 창의융합과정으로 이름 붙은 방과 후 수업이 있는데 선생님과 함께 보드게임, 블록 조립 같은 걸 한다. 또 그 뒤로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한글과 수학을 배우는 돌봄 수업이, 또 그 뒤로 한 시간은 종이접기 등을 하며 자유롭게 지내는 놀이 시간이 있다. 많은 친구들이 3시 반 또는 4시 반에 하원을 하고 우리 아이처럼 일하는 엄마를 둔 친구들 몇 명은 5시 반까지 유치원에서 지낸다. 등원 버스를 아침 8시 30분쯤 타고 가서 하원 버스 타고 집에 도착하면 6시쯤이 되니 우리 아이야말로 철저하게 9-6 생활을 이어온 셈이었다.


정규 수업시간 뒤로는 아이의 컨디션이 더욱 안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아이를 3시 반에 하원시키기로 했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간 몇 번의 방학, 감기 따위로 인한 가정보육을 겪으며 업무와 육아를 동시간, 한 공간에서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 빨리 집에 오라고 할 순 없었고 이렇게 저렇게 절충해 정한 하원 시간이 3시 반이었다. 일을 하는 형편상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고, 아이 컨디션이 좀 나아지면 다시 종일반을 보내야겠다 싶었다.


아이에게 당분간 일찍 집에 오라고 이야기하자 무척 좋아했다. 아침에 울며불며 등원버스를 탈 때도 집에 일찍 올 거니깐 조금만 참고 용기 내 보라며 달랬다. 그렇다고 해서 눈물을 뚝 그치고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전보다 울음 끝이 짧아진 듯했다.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기운 없이 앉아 있다가도 선생님이 엄마를 일찍 만날 수 있다고 달래면 진정이 되는 모양이라고 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는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집에 들어오면 가방은 거실에 벗어던지고 겉옷은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손을 씻고 냉장고 문을 열며 먹을 걸 찾았다. 매일 하기로 약속한 한글 워크북 몇 장을 풀고 나면 그야말로 제 세상이었다. 티비를 보고, 온갖 장난감을 꺼내 놀았다. 내게 같이 놀자고 조르는 건 당연했다. 내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맘껏 같이 놀 수 없다는 건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날 찾았다.


아이가 이른 하원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내 오랜 루틴이 곧바로 흔들렸다. 아이와 함께 집에 있으면 혼자 있을 때보단 상대적으로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전 시간엔 신경이 곤두섰다.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거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오후 시간에 처리할 일이 쌓일까 봐 불안했다. 점심시간엔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챙겨둬야 했다. 그래봐야 냉동실에 있는 걸로 이렇게 저렇게 때우는 식이었지만 안 챙기던 걸 매일 하려니 늘 고민스러웠다. 하원 버스가 올 무렵이 되면 15분남짓이지만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가야 하고, 그 사이에 회사에서 날 찾는 급한 연락이 올까 봐(사실은 그런 일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휴대전화로 사내 메신저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두세 시간 일찍 집에 온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무척 예민해졌다. 몸이 피곤한 건 둘째치고 마음에 조바심이 생긴 게 문제였다. 오전엔 평소처럼 일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커다란 컵에 커피를 가득 내려두고 가사가 없는 피아노재즈 같은 걸 틀어뒀다. 아이 간식 챙기는 데 들어가는 품을 줄이기 위해 핫도그니 떡이니 하는 걸 잔뜩 사 쟁여두었다. 아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고 안 하던 수학 워크북도 추가해 아이 일거리를 만들어줬다.


얼마간 이른 하원을 하자 아이의 기분은 전보다 좋아진 듯했다. 아침에 나와 떨어질 때마다 흘리던 눈물이 확실히 줄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치원에서 울거나 넋 놓고 있는 일 없이 일과에 곧잘 집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와 달리 난 갈수록 피로도가 쌓여갔다.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와 다시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져얄 것 같지만 난 2시가 되면 벌써 배가 살살 아팠다. 한동안 없던 편두통도 다시 생긴 것 같고 어쩐지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으면서 마음이 산만해졌다. 아이에겐 회사 핑계를, 회사엔 아이 핑계를 대며 이것도 저것도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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