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키운 아이

내 아들 별명은 선비

by anna

임신 12주 차쯤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었는데, 난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서랍에 붉은 보석이 가득 들어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걸 근거 삼아 당연히 딸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딸이라고 믿고 싶었다. 오랜 내 꿈 중 하나가 외동딸 맘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울 자신은 없고, 기왕 하나 있는 아이라면 엄마와 평생 친구가 되어준다는 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남자아이는 기운이 세고 활동적인 데다가 유난히 고집스럽고 생떼 부리는 일이 많아 키우기 힘이 든다는 얘길 많이 들어왔다. 때문에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몰래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온통 아들 육아에 맞춰져 있었다. '사는 게 심심하면 아들을 낳으세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집안 살림을 부수고 망가뜨리고 엉망으로 만든 사진,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형외과 또는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악쓰고 소리 지르며 떼쓰는 남자아이들 동영상을 끝도 없이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남몰래 각오를 다질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들은 남들이 말하는 순둥이였다. 먹성이 좋아 주는 대로 이것저것 잘 받아먹고 특별히 예민한 기질의 아이도 아니었다. 유별난 구석이 없어 또래 아이들과 섞어 놓아도 늘 점잖은 아이 역할을 맡았다. 몸으로 노는 것보단 앉아서 사부작거리기를 좋아해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수족구니 독감이니 유행하는 병에도 걸린 적 없었고 아이 키우며 한 번쯤은 가보기 마련이라는 응급실에 간 일도, 병원에 입원해 본 적도 없었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고 아이는 잠이 없는 편이라 난 입으로는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사실은 쉽게 키운 아이였다. 특별히 발달이 더디거나 까탈스럽지 않아서 육아서적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알아서 커 준 고마운 아이였다. 우리 아이를 보며 주변 사람은 이런 아이라면 둘도 키울 수 있겠다며 둘째를 낳을 생각이 없는지 물었지만, 나는 우스갯소리 반, 진심 반으로 체력과 정신력, 경제력이 딱 아이 하나 기를 수 있는 정도라고 받아쳤다.


임신 중에 직장을 관두고 출산 후 집에서 육아만 도맡아 하던 나는 아이가 돌 조금 지난 무렵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이 두 돌이 지날 때쯤 다시 직장을 찾아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일찍 좋은 기회가 찾아와 놓칠 수가 없었다. 이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데다가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회사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오전에 한두 시간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덜컥 일하게 되어 이젠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낮잠도 자야 했다. 예민하지도 까다롭지도 않은 아이였지만 기관 생활에 적응하는 건 더딘 편이었다. 2주쯤 어린이집에 등원하면 곧잘 적응할 거라고 한 선생님 말씀과 달리, 우리 아이는 한 달이 넘도록 등원할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하는 일이 없으니 굳이 아이를 적응시킬 필요가 없어 아이를 집에 데려와 밥 먹이고 낮잠을 재웠는데, 몸은 집에 있어도 노트북 앞에 붙들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아이를 종일반에 끼워 넣었다. 무척 걱정하며 내린 결정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오랜 시간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것에 적응했다. 덕분에 나 역시 집에서 하는 직장생활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두 살에 어린이집 종일반을 시작한 아이는 유치원에 가서도 정규 수업 이후 패키지, 돌봄 수업을 더하고 더해 종일 집 밖에 있다 돌아왔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9-6 생활을 이어갔다. 나와 남편은 이런 생활에 꽤 만족했다. 우선 나는 직장생활, 육아와 살림을 고루 할 수 있어 좋았다. 아이를 등원시켜 두고 바로 업무에 집중했다. 점심시간엔 아이가 저녁에 먹을 걸 준비해 두고 집안을 대강 돌봤다. 아이가 하원해 돌아오면 잠들기 전까지 고작 세 시간쯤 같이 놀고 돌봐주면 됐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가 각자 일을 하는 동안 아이가 기관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크게 염려할 게 없었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다섯 살에 입학한 유치원은 그래도 좀 컸다고 바로 적응했다. 어린이집에서부터 단짝으로 지내온 친구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도 했고, 종일반을 하는 고정멤버가 몇 명 있어서 나름의 팀이 형성됐다. 집에 있어봐야 티비밖에 더 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간식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학습과 놀이도 하는 유치원에 아이를 온종일 두었다.


나는 일요일 밤이 되면 고작 이틀 한 육아와 살림에 지쳐 '내일부턴 각자 스케줄 하자'고 자주 말했다. 각자 스케줄이란 남편은 회사로, 아이는 유치원으로, 나는 노트북 앞에서 약속한 시간만큼 할 일을 다 하는 것이었다. 제법 오랫동안 지켜온 우리 집 규칙 같은 거였고 농담 삼아 우리 가정 평화의 비결 같은 것이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불과 몇 달 앞둔 일곱 살 11월에 등원 거부를 하며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났고 나 역시 아이와 마찬가지로 불안과 걱정이 머릿속, 마음속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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